새 주소사업 골목까지 작명…지자체, 길이름짓기 진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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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간선도로 등에 대한 새 이름 부여사업을 벌이고 있는 일선 지방자치단체들이 도로 이름을 새로 만드느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간선도로부터 골목길까지 지자체별로 최대 2만여개의 도로 이름을 알기 쉽고 그럴 듯한 것으로 짓는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정자치부가 96년부터 추진 중인 새 주소 부여사업은 미국 등 선진국처럼 주소만 가지고 목적지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새로 이름지어진 도로를 기준으로 건물마다 고유 번호를 붙여나가는 작업이다. 도시지역은 2003년, 나머지 기초단체는 2009년까지 이 사업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의 경우 이름을 붙여야 할 도로는 모두 2만여개. 간선도로는 별 문제가 없으나 이면도로.동네를 가로지른 소로(小路) 등에 대해서는 주민들의 의견이 제각각이어서 작명에 애를 먹고 있다.

서울 관악구의 경우 이미 9곳의 도로에 대한 이름 붙이기 작업을 마쳤으나 주민들이 개명하자는 의견이 많아 26개 전체 대상 도로에 대해 이름을 새로 짓고 있다.

신림동에서 신대방로로 향하는 도림로의 경우 이 도로와 인접한 4개 동이 모두 제각각 이름을 제시해 구청측이 조정작업을 벌이고 있다.

광주시도 6천4백95개의 도로 이름을 새로 지어야 되지만 이름이 확정된 것은 1백여개뿐. ' 나머지는 늦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새 이름이 부여돼야 한다.

남구청의 경우 '수피아로' '향교로' 처럼 학교나 공공시설의 명칭을 따오면 작업은 간단하지만 활용할 대상이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이에 담당 직원들은 옛 문헌을 뒤지거나 향토사학자와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옛 지명을 발굴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1천여개의 도로 이름을 지어야 할 경남 창원시는 '동별로 의견을 모으고 있지만 애를 먹긴 마찬가지다. 큰 도로는 고유명사로 짓고 사잇길은 차례로 번호를 부여한다는 아이디어 채택을 검토 중이다.

광주시의 경우처럼 '옹달샘길' '고은길' 등 순수한 우리 말을 이용하는 곳도 있으나 무턱대고 쓸 수도 없다.

이름 자체가 예쁘긴 하지만 지역 특성과 걸맞지 않고 지명만 듣고는 어느 곳인지 얼른 와닿지 않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광주시 북구 '새 주소 부여 사업단' 공용(孔鏞)씨는 "인지도.지역특성.어감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하면서 지자체간 중복되지 않게 작명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고 말했다.

이해석.김상진.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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