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근안, 박처원 그리고 고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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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고문 기술자' 이근안(李根安)전 경감의 도피행각 배후에는 경찰의 대공수사 총책임자였던 박처원(朴處源)전 치안감이 있었다는 사실이 검찰수사로 드러났다.

朴씨는 88년 말 李씨가 김근태(金槿泰)씨 고문사건으로 수배되자 도피를 종용하고 1천5백만원의 자금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李씨사건의 배후 규명은 반인륜적 범죄 행위자와 관련자를 단죄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그 실상을 파악해 이 땅에서 고문을 추방할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도 반드시 이뤄져야 할 과제다.

그런 점에서 朴씨의 도피지원을 밝혀낸 것은 커다란 진전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검찰수사 내용으로는 朴씨를 李씨 배후의 실체로 보기에는 이른 감이 있고 앞으로 밝혀야 할 의문점도 적지않다.

우선 李씨에게 도피를 종용한 朴씨의 신분이 현직 경찰관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朴씨는 당시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은폐기도 혐의로 기소돼 경찰을 떠난 입장이었다.

朴씨는 자신의 부인을 통해 李씨 부인으로부터 李씨가 자수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대공수사팀의 간부들과 함께 李씨를 만나 도피를 종용했다고 한다.

朴씨가 대공수사의 책임자였다고는 하지만 이미 경찰을 떠난 마당에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겠느냐는 의문이 든다.

박종철.김근태씨 사건 등으로 경찰이 곤경에 처해 있던 상황에서 李씨마저 검거돼 고문의 진상이 밝혀지면 당시 정권이 커다란 타격을 입게될 것을 우려해 정권차원이나 아니면 최소한 경찰차원의 대책회의가 있었을 법하고, 李씨와 가까웠던 朴씨가 실행에 도움을 주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10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 李씨 가족에게 준 1천5백만원의 출처도 의심쩍다. 朴씨는 당시 특별한 수입도 없고 지병마저 앓아 형편이 넉넉지 않았을 것이다.

또 이미 李씨가 집에 숨어 있는 동안 경찰이 겉핥기 식으로 집수색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직에 逞?않은 사람들의 지원만으로 11년의 도피가 가능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같은 모든 정황을 종합할 때 경찰의 조직적인 비호 의혹이 생긴다.

검찰은 李씨의 도피뿐 아니라 고문을 지휘하고 은폐한 배후가 있는지 철저히 캐내야 할 것이다.

우리는 朴씨의 경우를 보면서 왜곡된 공권력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얼마나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朴씨는 평생을 대공분야에서 일하면서 공적도 적지 않아 치안감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자신이 지휘하던 조직에서 벌어진 고문이라는 공권력의 범죄행위로 인해 불명예 퇴진하고 고문한 부하를 비호하다가 70이 넘은 나이에 또 다시 사법처리되는 운명을 맞았다.

이제 다시는 이런 불행이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을 철저하게 규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을 역사의 장에 바로 기록할 수 있어야 고문의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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