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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새 은하 발견 이영욱 연세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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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오메가 센타우리' 라는 우리 은하 속의 또 하나의 은하를 발견해 전세계 천문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젊은 천문우주학자 이영욱(李榮旭.38)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교수. 은하진화탐사선을 추진하는 미항공우주국(NASA)과 공동으로 자외선 우주망원경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도 맡고 있어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대기업 간부처럼 깔끔하고 위트도 넘치는 李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 새 은하 '오메가 센타우리' 를 발견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우리 천문과학 수준이 세계적이라는데 놀라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 작은 은하들이 충돌하고 합병해서 우리 은하가 형성됐다는 이론을 지지해주는 첫번째 증거란 점에서 제자신도 보람을 느낍니다. 외국의 저명학자들이 지난 40년 동안 규명하려고 애썼던 오메가 센타우리의 정체를 '엉뚱한 나라에서 온 가난한 연구팀' 이 밝혀냈다는 게 더욱 흐뭇해요. '하늘은 연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한다' 는 말이 새삼 실감이 납니다. "

- 우주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30년전 흑백 텔레비전으로 보았던 아폴로 달착륙이 제 인생을 결정했지요. 만 여덟살 난 코흘리개였지만 그때부터 우주의 신비를 캐는 천문학자가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누구나 어린 시절엔 별을 보며 그런 꿈을 키우지만 커서는 그 꿈에서 깨어나지요. 아마 저는 덜 자란 모양입니다(웃음). 가까운 이들은 지금도 어릴 때 마음 그대로라고 한심해 해요. "

- 인류는 우주의 모습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건가요.

"허블 우주망원경은 지금 우주가 1백살이라면 스무살때의 빛을 볼 수 있습니다. 먼 거리의 빛은 그만큼 과거의 빛이죠. 이 빛은 급격히 희미해지므로 망원경의 구경을 크게 만들어 빛을 증폭시키고 대기의 방해도 안 받기 위해 우주에 망원경을 띄웁니다. 빅뱅 이후 태초의 빛은 다행스럽게도 ㎜파(波)영역이어서 상대적으로 단순한 장비로 관측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이후부터는 다른 장비가 필요합니다. 지름 8m인 차세대 우주망원경이 2008년 발사되면 빅뱅 후와 허블이 관찰하는 나이대 사이의 우주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을 여든살로 규정한다면 인간이 태어난 첫날 모습까지 알게 되는 겁니다. 우주의 비밀을 푸는데 상당히 가까이 와 있는 거죠."

- 일반인들의 천문학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사자자리 유성우 행사 때도 한 곳에 5백 명이 넘게 몰렸어요.

"새 은하 오메가 센타우리를 발견했다는 보도가 나간 후 전화와 E메일이 쏟아져 들어왔어요. 덕분에 청소년뿐 아니라 일반인의 관심도 무척 높다는 걸 알았어요. 우주의 신비를 널리 알리고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이 저희 과학자의 몫임을 재삼 깨달았지요. 특히 저희 연구단에 국민 한 사람 당 3백원씩의 세금이 지원되고 있는데 최소한 저희가 6백원어치는 돌려줘야 하지 않겠어요(웃음). 미국에 출장갈 때마다 평범한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이 블랙홀이 어쩌고 백색행성이 어쩌고 하며 묻는데 구사하는 용어가 '장난' 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은 왜 모를까 하고 속상해 했는데 이번에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갈망은 있는데 언론이나 정부의 정책, 우리 천문학자들이 뒷받침을 못한 거죠. "

- 천문학자들은 국내 여건이 너무열악하다고 해요. 그런데도 연구수준이 세계적이니 놀랍습니다.

"전에는 타 분야에서 천문학을 무시해도 실력이 없어 그러려니 하고 여겼는데 알고 보니 아니더라고요. 최근 과학기술논문색인(SCI)인용도가 다른 분야는 세계 수준의 20~60%인데 천문학은 1백%입니다. 사실상 1등인데도 그간 꼴찌로 세뇌교육을 받아온 거죠. 연구비지원 신청 때도 분야가 따로 없어 그날 기분에 따라 물리학.지구과학.기타를 넘나들며 신청했죠. 그러니 평가가 제대로 오겠어요. 세번 신청하면 한번 연구비를 받을까 말까 하죠. 연구비지원 신청서 쓰다가 1년이 다 가죠. 심사도 천문학자들이 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이제는 당당히 요구할 겁니다. 우리나라처럼 작은 나라에서 모든 분야를 다 키울 순 없고 국제경쟁력이 있는 것만 키우겠다고 하잖아요. 그 말대로 하라 이거죠. 과학기술 예산 3조원 중 천문학에 0.1%밖에 지원하지 않는 건 부당해요."

- 먹고 살기도 바쁜데 '우주의 신비탐험' 에 많은 돈을 쏟아 부을 수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영국이 그렇게 어려워도 전체 과학기술 예산 10%를 천문학에 지원합니다. 네덜란드.미국.이탈리아도 마찬가집니다. 국익과 관계가 있으니 그렇게 하는 겁니다. 21세기는 '우주개척의 시대' 입니다. 첩보위성도 스타(별)센서가 있어서 망망한 공간에서 위치를 아는 겁니다. 평양 반대쪽에 있는 별을 보고 1백80도를 돌리면 평양이 설정되는 거죠. 천문항해법은 우주시대에도 천문항해법인 것이죠. 2~3년 안에 돈을 많이 벌 연구에만 몰두해서는 만년 2등, 3등, 10등밖에 못해요. "

- 그래도 NASA와 공동으로 하는 은하탐사선 연구에 국가예산이 지원되는 것을 두고 '외국에 돈을 갖다 바친다' 는 비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현재 기술이전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분야가 천문학입니다. '한국이 이런데도 같이 끼는 나라구나' 하는 식으로 국가 신용도를 올릴 수도 있어요. 투자하는 돈보다 수백배의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거죠. '외국에 돈 퍼주는 거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적(利敵)행위를 하는 거라고 단언합니다. "

- '발은 지구, 머리는 우주' 식으로 생활하다 보면 현실과 괴리감도 클 듯 합니다.

"사실 사소한, 살아가는 일에 별로 관심이 안가요. 우주가 이렇게 넓은데 왜 이 좁은데서 서로 으르렁대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국가간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열 내는 사람은 이해가 잘 안돼요. TV뉴스도 시작한지 20분이 지나서야 봅니다. 신문도 통 안보다가 연구단 단장이 되고 나서 인터넷으로 중요 뉴스만 챙겨봅니다. 20명이 딸려 있는 연구단을 운영해야 되니까 할 수 없이 세상일에 조금 신경을 쓰고 있지요. "

- 세계 각지에서 온 연세대 연구단의 팀워크가 남다르다고 들었습니다. 외국의 좋은 자리를 버리고 모인데는 '상당한 이유' 가 있을성 싶은데요.

"제가 고교시절 아마추어 천문가 클럽에서 활동할 때부터 함께 했던 이들이죠. 연세대 배지 달려고 천문학과 온 게 아니라 천문학이 좋아서 온 진짜배기죠. 그중 몇명은 다른데서 받던 월급의 절반도 못받고 있어요. 모두 연구에 미쳐있어요. 사실 용병처럼 실컷 일해서 다른 나라에 좋은 일 시켜주기보다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게 보람이 있죠. "

- 별 탐구를 하려면 '올빼미 생활' 을 전전해야 할 것 같은데 건강은 어떻게 지키십니까. 혹시 가족들의 불만은 없습니까.

"천문학자라면 날만 좋으면 밤에 별 보고 낮에 쿨쿨 잔다고 생각하기 십상이죠. 하지만 이런 학자들은 전체 천문학자의 5%도 안될 겁니다. 저는 이론연구에 연구시간의 70%를 할애하기 때문에 밤을 샐 기회는 많지 않아요. 건강을 위해 특별히 하는 것은 없고 아들.딸과 주말엔 모형 비행기를 날리곤 하지요. 연세대 요트동아리를 제가 만들었을 정도로 요트를 좋아하긴 하는데 자외선우주망원경연구단 맡은 2년 동안 한번도 못 탔어요. "

- 이제 곧 새로운 천년이 열립니다. 새 천년에는 '우주의 기원' 에 관한 신비가 풀릴까요.

"20세기 한세기 동안 지금까지 인류가 우주를 이해하고 있던 것의 수백 배를 알게 됐습니다. 은하가 우주의 기본 구성단위라는 것,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어요.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공간과 시간과 물질이 만들어졌다는 빅뱅이론도 나왔지요. 과학이라기 보다 신화 같은 얘기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일련의 관측사실에 대해 모두 증명이 됐거든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수수께끼는 반드시 풀립니다. "

- 지난번 SCI 국내 최다 인용논문 저술자로 저희 신문과 인터뷰했을 때 노벨상에 도전하겠다고 하셨지요. 노벨상에도 국력이 작용하는 것 같던데 자신있습니까.

"은하진화탐사선이 성공해 제가 알아낸 방법으로 우주기원을 알아내게 된다면 노벨상 수상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문제는 평가지요. 평가하는 사람들은 다 선진국 사람들이고 팔이 안으로 굽는데….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미있어 연구하는 거고 하다보면 중요한 결과도 나오고 그러다 보면 노벨상도 '남의 얘기' 가 아니지 않겠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세금으로 우리를 지원해주는 국민에게 흐뭇함을 안겨줄 수 있느냐는 거죠. "

[이영욱 교수는]

▶61년 서울 출생

▶84년 연세대 천문학과 졸업

▶89년 미국 예일대 천체물리학 박사

▶89~90년 캐나다 빅토리아대 연구원

▶90~93년 NASA 우주망원경연구소 연구과학자

▶93년~현재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교수

▶97년~현재 과학기술부 창의적연구진흥사업 자외선우주망원경연구단 단장

▶90년 더크브라우어상(예일대 우수박사학위 논문상)

▶90년 NASA 허블펠로십

▶91년 NASA 표창장(허블우주망원경 계획에 기여한 공로)

▶부인 정청석(鄭靑石.37)씨와 1남1녀

만난 사람 = 최지영 생활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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