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디스크 공동조사 갑자기 철회…수사 신빙성 큰 흠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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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검찰이 문일현씨 노트북 컴퓨터의 원래 하드디스크 복구작업에 중앙일보 전산관계자의 참여를 배제시킴에 따라 수사의 '투명성' 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하드디스크는 중앙일보의 소유물이므로 파일 내용을 복구, 검토할 경우 주인의 입회가 원칙이다. 文씨가 몰래 교체했기에 원 하드 디스크는 회사 소유로 봐야 한다는 게 일반론이다. 게다가 文씨가 작성한 문건 중에는 회사 기밀로 분류될 사안도 있을 수 있다. 이 점은 검찰도 처음부터 인정했던 부분이다.

특히 하드디스크에는 언론장악 음모의 실체를 규명해 줄 文씨의 사신(私信)이 수록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 굳이 중앙일보가 아니더라도 제3자의 참관 필요성이 절실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검찰은 불필요한 오해에 휘말릴 수 있다. 잘못하면 "여권 실세들을 의식, 검찰 입맛대로 사건을 요리하지 않았느냐" 는 '뒷말' 이 나올 게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단 얘기다.

아울러 명백한 사생활 침해가 없는 한 주요 문건들은 공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민회의 이종찬 부총재에게 보내진 사신이 복구될 경우 즉각적인 내용 공개가 없다면 격렬한 정치적 쟁점으로까지 비화될 것으로 보인다. "분석 결과 언론장악 음모의 증거가 포착됐기에 공개 못하는 것 아니냐" 는 집중 포화가 야당측으로부터 쏟아질 수밖에 없다.

중앙일보 언론장악음모 분쇄 비상대책위도 12일 발표한 성명에서 "검찰은 무엇이 두려워 중앙일보의 재산인 하드 디스크를 혼자서만 보려 하느냐" 며 "디스크의 내용물은 한 대목도 빠짐없이 공개돼야 한다" 고 촉구했다.

그러나 검찰은 중앙일보측 참관은 물론 신속한 사신 공개마저 거부하고 있다. 文씨의 사생활 보호 때문이라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文씨의 문건들을 공개하면 개인비밀 침해가 된다" 며 "본인이 원치 않으면 내용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고 못박았다.

특히 검찰이 보여준 행태도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검찰은 文씨의 '빈껍데기' 노트북이 공수됐을 때는 중앙일보측 참관을 허락했었다. 이는 곧 文씨 조사를 통해 하드 디스크 교체사실을 파악한 검찰이 '모양새 갖추기' 로 중앙일보측을 참여시켰다는 말이 된다.

반면 진짜 하드 디스크가 도착하자 검찰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회사 기밀이 있을 수 있어 참관을 허락하는 게 옳다" 는 논리는 쑥 들어간 것이다. 검찰은 "원 하드 디스크가 文씨의 것이며 본인의 동의를 얻어 제출받았기 때문에 회사측과 전혀 관계가 없다" 고 말을 바꿨다.

검찰이 수사 결과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려면 무엇보다 수사를 투명하게 진행시켜야 한다는 게 법조계 주변의 지적이다.

남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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