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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 노년시대] 7. 널려있는 일자리…국내 노인취업 현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서울 동대문구 S아파트 관리소장인 차명근(가명.64)씨. 만 2년째 일하고 있는 그는 퇴직후 젊은이 못지않은 의욕과 노력으로 지금의 직업을 다시 '쟁취' 했다.

61세의 나이에 주택관리사 시험에 응시해 합격하고 아파트 관리소장직에 도전했던 것.

"건강한데도 자식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한다는 게 싫었어요. 평소 정신은 또렷하다고 자부하고 있어 자격증을 따기로 마음먹었지요. "

차씨는 막내 아들 또래와 어울려 사설학원을 다닌 것은 물론 시험을 한달 여 남겨놓고는 서울대 앞의 고시촌까지 찾아 나섰다.

6개월간의 집중적인 공부 끝에 결국 차씨는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거머쥐게 됐고 그토록 바라던 취업의 문도 열렸다.

부산노인신문 명예기자 송영조(70.부산시 수영구 광안1동)씨. 55세까지 대기업 비서실에서 일했던 '인텔리' 였지만 재취업의 길은 멀고 험했다.

친구 회사일을 도우며 지내던 송할아버지는 2년 전부터는 '봉사를 일로 삼겠다' 고 결심, 부산광역시 노인복지관에서 발행하는 '부산노인신문' 자원봉사자(기자)로 나섰다.

"수입은 없지만 이리저리 취재현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건강이 부쩍 좋아졌어요. " 라는 송할아버지는 "기사 쓴다고 머리를 짜내다 보면 치매도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며 웃는다.

'일하는 것' 은 대다수 노인들에게는 현실에서 이뤄지기 어려운 꿈 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처럼 '일자리' 에 대한 생각을 바꾸면 일감 찾기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 지금까지의 경험을 사회에 되돌리는 자원봉사는 노후를 신나게 하는 일감이다.

상명대 이금룡 가족복지학과 교수는 "우리 나라 노인들은 자원봉사를 자기희생적인 작업으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고, 가족들도 '주책' 이라며 만류하곤 한다" 며 "그러나 자원봉사는 노후에 삶의 의미를 찾고 성취감.소속감.자아 존중감을 갖게하는 중요한 수단" 이라고 말한다.

일본 동경도 노인종합연구소 시바타 히로시 박사는 "사회가 고령자를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들도 경험과 지혜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회" 라고 평했다.

서울 구로노인복지관에서 영어회화를 가르치는 이풍훈(68.서울시영등포구대림동) 할아버지는 그 좋은 예.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30여년을 주한미군에서 근무한 그는 구로노인복지관에서 일주일에 두번씩 노인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가르치는 것이 즐겁고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 는 그는 외국에서 대한적십자사에 보내오는 각종 공문 번역과 외국 손님 숙소 안내 등의 자원봉사도 한다.

아직 우리 사회에 노인의 취업과 자원봉사를 지지해줄만한 충분한 망(網)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걸림돌

그러나 노인세대들이 변화하고 수요가 늘면서 변화의 조짐이 생겨 나고있다. 동료교수.대학생 등을 주축으로 자원봉사자 인력 은행인 '한국복지인력뱅크' 를 최근 설립한 손지미 박사는 "민간, 지역사회 단위에서 많은 자원봉사 그룹들과 망이 생겨날 것" 이라고 내다봤다.

또 한국장년협회(KASA)등 장년들이 활발한 사회참여를 위한 새로운 모임을 결성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어 노인들이 활약하는 사회가 멀지만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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