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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이혼후에도 동거하는 부부 늘어

중앙일보

입력

프랑스 파리 외곽의 에손느에 사는 공무원 쥘리(36ㆍ여)는 1년 전 남편 폴과 이혼했다. 그러나 쥘리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폴과 같은 집에 산다. 폴은 거실의 간이침대에서 자고 쥘리는 안방을 이용한다. 이혼할 때 두 딸은 각각 한 명씩 맡기로 했기때문에 언니는 아빠와, 동생은 엄마와 함께 잔다. 쥘리와 폴은 한 집에 살기는 하지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나 저녁에 집에서 만나도 서로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 대화라곤 오로지 아이들 문제와 관련된 것 뿐이다. 때문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면 집안에 침묵과 긴장이 흐른다. 쥘리는 “1년 전 이혼할 때만해도 아침에 얼굴을 보는 사이로 남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지만 경제적 이유로 그렇게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경제위기 여파로 프랑스에서 이혼을 하고도 함께 사는 이른바 ‘이혼동거부부’가 새로운 세태로 등장했다고 일간 르 파리지앵이 최근 보도했다. 헤어지기로 합의는 했지만 높은 집세가 부담되거나 혹은 집이 팔리지 않아 돈을 마련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혼 전에 별거를 하면서 냉각기를 갖는 경우는 있었지만 반대로 이혼을 하고도 함께 사는 건 전에 없던 현상이다.

예전 같으면 집이 있는 부부는 공동 명의로 구입한 집을 팔아 각자의 몫을 챙기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10년째 오르기만 하던 집값이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크게 떨어지면서 거래 역시 뚝 끊어졌다. 집을 웬만큼 싸게 내놔도 팔리지 않는다. 때문에 새 집 얻는데 쓸 서로의 몫을 챙길 방법이 없는 것이다. 또 모기지론으로 구입한 경우 역시 중도에 해지하고 집을 팔 경우 손해가 크기 때문에 요즘처럼 어려울 때 엄두를 내기 힘들다.

그나마 집이 있는 경우는 선택의 여지가 있지만 세들어 사는 부부는 더욱 비참하다. 부부가 조금씩 돈을 보태 원룸에 살던 젊은 부부들은 혼자서는 집을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루아르 지방에 사는 세실은 6개월전 남편과 사이가 급격히 안 좋아지면서 이혼을 했지만 역시 같이 살고 있다. 세실 부부는 방 한 칸에서 서로 한쪽 구석에 붙어 벽을 바라보면서 잠을 청한다. 세실은 파리지앵과의 인터뷰에서 “서로 감정이 상할대로 상한 사람과 한 방에서 지내는 게 고역이지만 그렇다고 스물여섯이나 돼서 부모 집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동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생활보호대상자들을 위한 임대주택을 얻어보려고 하고 있다.

이혼을 전문으로 처리하는 파리의 한 변호사는 “매월 30여 건의 이혼 사건을 담당하는데 요즘 들어 월 5∼6쌍의 부부가 경제적 이유 때문에 이혼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매년 13만∼14만쌍이 이혼을 한다.

파리=전진배<특파원allons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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