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공적자금 운영실태·대책] 공적자금 64조면 된다더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난 5월 재정경제부는 국내 금융기관의 부실은 많아야 1백조원이고 이를 정리하기 위해 필요한 공적자금은 50조원이면 충분하다고 장담했다. 97년에 이미 들어간 14조원까지 합쳐도 64조원이면 부실을 모두 털어내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란 설명이었다.

그러나 불과 6개월 만에 64조원의 공적자금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정부보유 주식까지 동원하고 있다. 게다가 새로 공적자금을 쏟아부어야 할 곳이 내년에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 어디에 얼마나 썼나〓은행.종합금융사 등의 부실채권을 털어주는 데 20조4천억원을 썼다. 또 부실은행이나 합병은행의 증자를 지원하는 데도 16조6천억원을 썼다. 그래도 이런 곳에 쓴 돈은 부실채권을 담보로 자산담보부증권(ABS)을 발행하거나 해당 금융기관이 정상화된 뒤에 보유지분을 팔아 회수할 희망이라도 있다.

그러나 퇴출 금융기관의 예금 대지급에 쓴 18조2천억원은 해당 금융기관의 자산보다 부채가 많아 잘해야 절반 정도를 회수하리란 예상이다.

국회동의를 받은 64조원 외에도 은행과 서울보증보험에 ▶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ADB) 차관자금 12억달러▶국유재산관리 특별회계 자금 현물출자 1조5천억원▶공공자금관리기금 출자 4조4천억원 등 7조3천억원의 '딴주머니돈' 이 더 들어갔다.

◇ 공적자금은 바닥 위기〓정부는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올해 추가로 들어가야 할 공적자금은 14조3천억원 정도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5개 퇴출은행을 인수한 은행에 대한 손실보전 2조3천억원 등 은행권에 3조2천억원▶대한생명 2조원을 포함, 6개 부실 생보사에 4조4천억원▶퇴출 신용금고와 신협의 예금대지급에 2조8천억원▶화의(和議)등에 들어간 기업의 채권가격 정산에 3조9천억원 등이다.

이를 위한 재원으로 예금보험공사에 남은 공적자금 8조8천억원과 성업공사가 회수한 공적자금 8조7천억원을 합쳐 17조5천억원을 동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필요한 곳에 다 써도 3조원 정도가 남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대우 워크아웃과 금융시장안정대책을 발표하기 이전의 계산이었다. 대우 워크아웃과 금융시장 안정대책에 따른 투신사 지원.성업공사의 대우 무보증채권 매입에 새로운 자금수요가 9조5천억원이나 생겼다.

결국 이것만으로도 6조원 이상 모자라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보유주식 1조5천억원 어치를 동원하기로 했다. 성업공사의 대우채권 매입자금도 정부보증을 받지 않은 무보증채권 등으로 지급키로 했다.

◇ 내년이 더 문제〓정부는 내년에 줄잡아 10조~15조원의 공적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제일.서울은행에 2조~3조원을 더 넣어야 하고, 대한생명도 빠른 경영 정상화를 위해선 1조원 안팎이 더 필요하다.

내년말까지는 최소한 예금의 원금은 보장해주는 예금자 보호법이 유효하기 때문에 추가로 문을 닫는 금융기관이 생기면 예금대지급도 해줘야 한다. 게다가 내년 7월 채권시가평가제와 함께 본격화될 투신 구조조정에도 공적자금이 필요하다.

내년 상반기부터 일어날 또 한차례의 금융기관 합병바람에도 공적자금이란 '당근' 이 있어야 한다.

이에 비해 공적자금 회수 전망은 밝지 않다. 부동산 경기회복으로 성업공사의 ABS발행에는 그런대로 기대를 걸어볼 수 있지만, 예금보험공사의 은행주식 매각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가 현물출자 등에 동원 가능한 주식도 기껏해야 2조~3조원 정도다. 그렇다고 공적자금 추가조성은 아예 꿈꾸기도 힘든 상황이다.

엄낙용(嚴洛鎔)재경부차관은 "내년 총선과 국민정서를 감안할 때 공적자금 추가조성에 대한 국회동의는 사실상 불가능하리라고 본다" 며 "정부는 기존 공적자금을 최대한 회수하고 정부보유 주식 등 다른 재원을 찾아 대처할 방침" 이라고 말했다.

◇ 대책은 없나〓무엇보다 성업공사가 보유 부실채권을 빨리 매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은행 소유구조를 포함, 금융산업 개편에 대한 정부방침을 조속히 정해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금융기관 지분의 매각도 서둘러야 한다.

올해로 금융 구조조정의 큰 가닥은 잡힌 만큼 손실분담의 원칙도 분명하게 세워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최공필(崔公弼)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실적배당상품의 손실분담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리며 개인.일반법인 투자자들에게 대우채권의 50~95%를 보장해준 전례를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 고 지적했다.

황진우(黃鎭宇)한화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공적자금 투입으로 일단 급한 구멍은 막은 만큼 정부는 앞으로 새로운 구멍이 생기지 않도록 금융기관들에 대한 건전성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며 "공적자금 투입도 투명한 원칙 아래 철저한 책임추궁과 함께 이뤄져야 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정경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