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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기획] 외국인 파워 엘리트 ② 국제중재 분야 실력 커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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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국제중재의 주류로 뜬 국내 로펌=불과 7~8년 전만 해도 이 같은 국경을 넘나드는 국제중재는 외국 로펌들의 독무대였다. 한국 로펌은 외국 로펌의 보조 역할을 하는 공동대리인 정도의 지위였다. 그러나 최근 크게 달라졌다. 국제중재 사건을 독자적으로 주도하고 처리하는 리드 카운슬 역할을 한다. 아예 외국 기업을 대리하는 경우도 많다. 현재 현대오일 지분매각을 둘러싸고 현대중공업과 아부다비국영석유투자회사가 벌이는 2조원대의 국제중재는 태평양과 세종이 각각 대리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엔 국제무대에서의 언어소통 능력과 전문성을 갖춘 외국인 변호사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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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사법시험을 거치지 않은 외국 변호사는 지금까지 해외동포나 유학생 출신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최근엔 외국인 변호사가 크게 늘고 있다. 국내 10대 로펌의 외국인 변호사(해외동포 제외)는 5년 전 9명에서 올 7월 현재 34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국내에서 직접 재판에 참여할 수 없다. 로펌의 파트너 자격도 제한된다. 그런데도 이들이 한국으로 몰리는 것은 국제중재 사건이 늘면서 외국 변호사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국제중재법원인 ICC에 접수된 사건 중 한국기업 비중만 봐도 금세 확인된다. 2006년 1614개의 분쟁 당사자 중 한국 기업이 37개였다. 2007년엔 1611개 당사자 중 40개가 한국 기업이다. 국제중재에 회부된 사건의 분쟁액수는 수백억~수조원대다. 로펌에 돌아오는 수수료도 거액일 수밖에 없다. 삼성자동차 관련 채권단 분쟁은 5조원에 달했고, 대생 인수합병(M&A)을 둘러싼 한화와 예금보험공사 간 국제중재는 1조원이 넘었다. 대한상사중재원 안건형 차장은 "지금도 한국 기업과 관련한 1조원대의 중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태평양 김갑유 변호사는 “국제중재 분야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는데 국내에는 여전히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부족하다”며 “그래서 외국 변호사를 영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중재 과정에서 외국인인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우리와 같이 일하는 외국인 변호사를 통해 간파할 수도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세계 유수 로펌 출신도 한국행=한국이 중재시장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면서 수준 높은 외국인 변호사가 유입되고 있다. 과거 법조계엔 영어를 잘하는 한국사람이나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이 드물었다. 언어의 장벽만 넘으면 변호사로서의 자질은 불문하고 채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유수의 로펌 출신 변호사들이 직접 한국 로펌에 지원한다. 지원한다고 무조건 받아주는 것도 아니다. 꼼꼼하게 경쟁력 여부를 따져 채용한다. 그래서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한국 로펌에서 일하는 외국인 변호사의 수준이 훨씬 높다고 정평이 나 있다.

태평양의 크리스텐슨 변호사는 하버드 법대를 나와 영국 로펌 프레시필즈 뉴욕사무소에서 일하다 세종을 거쳐 태평양에 직접 지원했다. ICC 출신인 모리슨 변호사는 “ICC에 있을 당시 아시아·태평양 총괄이라 이 지역 사건을 다 들여다볼 수 있었다”며 “한국시장에서 배우는 게 경력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일본 로펌에서 근무하다 한국에 온 맥아더 변호사는 “일본 법조계는 한국에 비해 국제화 수준이 떨어진다”며 “한국은 상당히 높은 글로벌 수준을 갖췄다”고 말했다.

최근 외국인 변호사가 증가하는 것은 국내 로펌들이 본격적인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로펌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과도 무관하지 않다. 국내는 현재 3단계 개방 단계 중 1단계인 외국인 변호사의 외국법 자문업무 등을 허용하는 ‘외국법 자문사법’을 공식 발효해 제한적이나마 빗장이 풀린 상태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박노형 교수는 “한국인은 외국 로스쿨을 나왔다 해도 국제중재에는 한계가 있다 보니 외국인 변호사를 영입하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외국인 변호사 증가 추세가 계속되고 거꾸로 한국 변호사들의 외국 로펌 진출도 왕성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앤장 윤병철 변호사는 "법률시장이 완전히 개방되면 외국인 변호사 뿐 아니라 영·미 유명 로펌의 진출도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안혜리·이종찬·최선욱·이정봉 기자 , t사진=조진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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