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 (4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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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48. 중동 세일즈외교

나는 66년 가을 해외공관에 긴급 훈령을 보냈다. 한국이 돈벌이 할 게 뭐 없는지 알아보라는 내용이었다. 요즘이야 '외교관〓세일즈 맨' 이라는 등식이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만 당시만 해도 각 공관에서는 꽤 당황한 모양이었다.

이같은 이례적 지시는 朴대통령 때문이었다. 언젠가 대통령은 내게 "외교관이라는 친구들 그저 옷이나 잘 입고 좋은 차에 세금만 축내는 건달들 아니냐" 며 혀를 끌끌 찬 적이 있었다.

나 역시 '조국근대화를 외교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는 생각에 훈령을 보냈는데 유독 이수영(李壽榮)프랑스 대사의 보고서가 눈에 띄었다. '중동지역 석유개발로 아랍국들이 큰 돈을 벌어 현대화에 집중 투자하고 있으니 한국에도 기회가 있을 것' 이라는 요지였다.

때마침 홍일(洪逸.전 튀니지대사)외무부 중동과장도 유엔대책 논의차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을 건의했던 터라 朴대통령에게 중동순방 계획을 보고, 허락을 얻었다.

66년 12월 洪과장과 함께 중동지역 첫 방문지인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李대사와 합류, 팔레비 국왕을 예방했다. 유난히 큰 코에다 전형적인 영국 영어를 구사하는 그는 국왕으로서의 권위를 한껏 풍겨내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 "이란이 현대화를 추진중인데 어떠냐□" 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 뒤 수행원을 물리치고 서재로 나를 안내했다. 당시 이란에는 한국 운전기사들이 취업차 나와 있었는데 팔레비는 '가족들과 떨어져 있는데도 너무 근면.성실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우리 국민성이 본래 그렇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가족은 지키겠다는 책임감이 투철하다' 고 설명했더니 팔레비도 감동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러더니 "한국이 이란에 근로자를 보내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 며 인력수출에 매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 순방의 하이라이트였다.

검은 옷에 하얀 터번을 쓴 파이잘 왕은 첫 눈에도 고압적으로 보였다. 경호원들이 물샐 틈 없이 에워싸고 있는데다 대신(大臣)들 마저 코가 땅에 닿을 만큼 머리를 숙이고 있는 등 엄숙하기 그지 없었다.

나는 분위기를 좀 부드럽게 하려고 나와 서로 비슷한 시기에 유학했던 옥스퍼드 대학 얘기를 꺼냈다. 나는 '옥스퍼드에서 몇번 뵌 적이 있다' 고 했더니 그제서야 파이잘은 '그러냐' 며 반갑다는듯 얼굴을 폈다.

파이잘은 "한국.중국.일본이 늘 혼동되는데 어떻게 다르냐?" 고 묻는 것이었다. 내가 "세 나라 여자들을 보면 금방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고 하자 그는 귀를 쫑긋 하며 다음 말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일본 여자는 인형 같고 중국 여자는 지성적이며 한국 여자는 섹시하다" 고 했더니 파이잘 왕이 파안대소(破顔大笑)하며 내게 귓속 말로 "사실 나도 섹시한 여자가 좋거든" 하는 것이었다.

말문이 트이자 파이잘 왕은 거침이 없었다. '유엔문제는 적극 도와줄 테니 또 도울 일이 있으면 얘기하라' 며 마치 선심이라도 쓸 기세였다. 마침내 뒤에 있던 李대사가 "섬유, 섬유!" 라고 내게 귀띔을 해 줬다.

그래서 내가 "한국의 섬유산업은 세계적" 이라고 했더니 파이잘은 "그거 가지고 돈 벌겠소? 우리에게는 건설이 필요한데…" 하며 입맛을 다셨다. 나는 기회를 놓칠세라 "한국 사람이 손 재주가 뛰어나 건축에서는 아시아 최고" 라고 설명했다.

파이잘은 "그것 잘됐구만. 한국이 최고라니 우린 현대화하고 당신들은 돈을 벌고 말이야" 하며 매우 흡족한 표정이었다. 사실 건설업체의 중동진출은 생각지도 못했던 터에 파이잘 왕의 충고는 결정적이었다.

게다가 중동진출을 놓고 각국이 경쟁을 벌이고 있던 때에 파이잘이 한국에 보여준 호의적 태도는 한국의 중동진출에 결정타가 되었다. 파이잘은 그야말로 '중동진출의 은인' 이었다.

나는 귀국하자마자 대통령에게 중동상황을 보고했다. 한국 현대화의 또다른 달러 박스 중동의 빗장은 그렇게 열렸다.

이동원 전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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