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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송한 테러동기]사르키산 총리 失政 보복인듯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아르메니아 국회 피습사건은 이 나라의 복잡한 정치.경제.외교적 상황이 빚어낸 결과로 보인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르메니아에서는 최근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크고 작은 테러사건이 빈발했었다.

◇ 범행동기〓범인들이 스스로 밝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갖가지 추측만 난무하고 있다.

우선 사르키샨 총리가 이끄는 정부의 정치.경제정책에 대한 불만 표출로 보는 분석이 유력하다. 사르키샨은 그간 국내경제의 여러 부문을 통제해 왔으며, 특히 지난 수개월동안 일어난 잇따른 총격사건은 부패한 국방부와 내무부 관리들간의 이권다툼과 연결돼 있을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의 주범 우나냔도 총기 난사 후 TV와의 인터뷰에서 "아르메니아 재건에 실패한 사르키샨 총리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고 밝혔다.

소수의 범인들이 감행한 이번 행동에는 배후세력이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주범 우나냔이 '다쉬나크' 로 알려진 아르메니아 혁명연합 소속이었다는 것이다. 이 단체는 1890년 민족주의 결사조직으로 만들어졌다. 역사가 가장 오랜 정치단체로 좌익 급진 민족주의 성향을 띠고 있다. 과거 아르메니아 정부가 이 단체를 탄압한 데 대한 보복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다쉬나크는 코차랸 대통령의 현 정부와는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고, 다쉬나크측도 우나냔이 벌써 수년전에 조직에서 축출된 인물이라며 이번 사건과의 연관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또 지난 10여년 동안 아르메니아 정치를 지배해 온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이 이번 사건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최근 미국 주도하에 아제르바이잔과 화해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반발한 극렬 민족주의자들의 소행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지난해 2월 군 총수였던 사르키샨은 당시 총리였던 코차랸과 함께 아제르바이잔에 대해 온건노선을 편다는 이유로 레본 테르 페트로샨 대통령을 강제 축출했던 인물. 또 최근의 대(對)아제르바이잔 화해 움직임도 코차랸 대통령이 주도했기 때문에 설득력이 다소 떨어지는 주장이다.

◇ 아르메니아는〓옛 소련 영토인 러시아 남부 카프카스 산맥 주변국가. 최상품 브랜디를 만들어내는 곳으로 유명하다.

고대문명의 발생지 중 하나로 1세기부터 페르시아.터키.러시아의 세력 각축장이었다가 19세기 후반부터 러시아 영토가 됐다. 지난 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독립, 현재 독립국가연합(CIS)의 일원이다. 경제적으로는 옛소련 지역에서도 하위권에 속한다.

아르메니아인은 301년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민족. 이슬람국가인 아제르바이잔과 오랜 갈등관계에 있다.

특히 아르메니아인이 주민 75%를 차지, '카프카스 지방의 코소보' 인 아제르바이잔 내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둘러싼 전쟁으로 국제적 초점이 되기도 했다.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지난 88년 독립을 선언한 뒤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을 거쳐 94년 평화협정이 체결된 뒤로는 사실상 아르메니아의 영토가 됐다.

아직도 산발적인 교전이 발생하고 있다. 코차랸 아르메니아 현 대통령은 94년 평화협정 이전 나고르노-카라바흐의 대통령을 지냈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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