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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면목고 前교사 김준태씨] 월급 쪼개돕다 퇴직금도 선뜻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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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똑똑한 제자들이 가정형편 때문에 배움의 길을 걷지 못하는 것은 선생으로서도 가슴아픈 일이지요. " 지난달 서울 면목고교 교사직에서 정년퇴직한 김준태(金俊泰.65)씨는 이달초 퇴직금 가운데 2천만원을 떼어 집안 사정이 어려운 제자들을 도와달라며 학교에 기탁하면서 이렇게 동기를 설명했다.

97년 3월 이 학교에 부임했던 金씨는 국어과목을 맡으면서 '천사표 선생님' 이라고 불려왔다.

부임 석달 뒤인 6월부터 그는 동료 교사들과 함께 '면목 장학금' 을 만들어 가정형편 때문에 학교에 다니기 힘든 제자 돕기를 시작했다.

金씨는 "점심 한끼를 해결하지 못해 수돗물로 허기를 달래는 아이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고 말했다.

그는 퇴직 직전까지 월급에서 10만원씩 총 2백60만원을 장학금으로 냈고 지난해 5월에는 둘째 아들 결혼식때 들어온 축의금에서 1백만원을 떼어내 장학금에 보탰다.

같은 학교의 교사들도 앞다퉈 나서면서 '면목 장학금' 규모는 10월 현재 2천1백여만원으로 불어났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학생 47명이 등록금(분기별 28만1천1백원) 면제 혜택을 받았다.

여기에다 金씨의 퇴직금 2천만원까지 포함되면 장학금 혜택을 받는 면목고교 학생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이 학교 오영호(吳榮皓.55)교사는 "돕는 선생님들이나 도움을 받는 제자 모두 누가 얼마씩 지원하고 지원받는지 서로 알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金선생님은 강조해왔다" 고 말했다.

金씨는 "세명의 아들이 모두 이 학교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아들들이 진 빚을 갚는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일 뿐" 이라며 쑥스러워했다.

63년 고향 전주에서 첫 교편을 잡은 金씨는 69년 면목여중으로 전근, 당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 집에 '쌀 한말' 을 지원해준 미담도 갖고 있다.

95년 제대 직전 익사사고로 막내 아들을 잃은 그는 '죽어서라도 사회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 며 '아들 시신을 세브란스 병원에 해부용으로 기증한 가슴 저린 사연도 있다.

이 학교 한상섭(韓相燮)교장은 "교육 현장이 무너진다는 아우성이 나오는 시대에 金전교사의 작은 정성은 참스승의 의미를 일깨워 주었다" 고 말했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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