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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치듯 느끼는 깨달음-도올 김용옥박사 '금감경 강해' 출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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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도올 김용옥(金容沃.51.미국 뉴잉글랜드 복잡계연구소 철학분과위원장)박사가 서기 2세기께 인도에서 완성된 공(空)사상의 기초가 되는 불교경전 '금강경(金剛經)' 을 알기 쉽게 풀이한 '금강경 강해' (통나무.9천8백원)를 펴냈다.

'금강경' 은 석가모니가 수제자 수보리의 질문에 답한 것을 모은 것인데 학문적 가르침보다는 직관적 종교 체험을 중시하는 선종(禪宗)에서 일찍부터 중심으로 삼았던 경전이다.

저자에 의하면 '금강' 은 범어(梵語)로 '바즈라' , 원래 '벼락'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맥락에서 '금강경' 은 한마디로 '청천벽력으로 내려치는 지혜' 라는 것이다.

"고집(苦集:집착으로 인한 삶의 고통)과 멸도(滅道:집착에서 벗어나려는 수행)의 경계에 '끊음의 벼락' 을 떨어뜨려야 하는데 문제는 이 벼락을 나를 둘러싼 대상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게 내리도록 해야 한다" 는 것이 도올의 견해다.

이번 책을 통해 저자는 특히 대승불교가 보살(菩薩:깨달음을 바라는 자)과 부처를 차별화하는 것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금강경' 은 '보살이 부처고 부처가 곧 보살인 일체성' 을 요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금강경 강해' 에 언급된 구절대로라면 "여래(석가모니)는 말하였다. 일체의 뭇 상들이 곧 상이 아니라고. 여래는 또 말하였다. 일체의 중생이 곧 중생이 아니라고" (如來說一切諸相, 卽是非相. 又說一切衆生, 則非衆生)와 같은 이치다.

도올이 '금강경' 을 처음 접한 것은 60년대 천안의 광덕사에서 승려생활을 할 때였다. 당시 그는 최고의 식자들에 의해 철학적으로 집대성된 '반야심경' 의 체계에 빠져 '금강경' 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 7월 도올서원에서 한달에 걸쳐 '금강경' 을 강의하면서 생활에서 우러나온 소박한 설법에 심취해 갔다.

특히 대개의 '금강경' 독해가 일본의 '대정대장경' 을 저본으로 했던 것과는 달리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텍스트로 삼았던 점 또한 각별한 것이었다.

저자는 금강경이 선불교적이면서 공(空)이란 단어를 한번도 사용하지 않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생활 속에서 느껴야 하고 그 향기에 취해 있을 때만 위력을 발휘하는 경전으로 간주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그는 강의 직후 생각들이 멀리 도망가기 전 탈고해야겠다고 서둘렀고 스무날 만에 방대한 양의 원고를 완성했다고 한다. 도올의 다음과 같은 철학적 고백은 이 책의 의미를 더 새롭게 하고 있다.

"요즈음 들어 무언가 앎에 대한 실마리를 보고 있다. 그동안 머리 속에 담아 놓은 지식들이 서로 엉켜 춤을 추면서 어떤 모습을 지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첫 저술이 '금강경 강해' 다. " 같은 맥락에서 그는 책의 말미에 " '금강경' 은 논리의 전개가 아니다. 이것은 깨달음의 찬가요, 해탈의 노래다" 고 적고 있다.

저자가 '금강경' 의 의미를 세가지 21세기적 인류명제, 즉 '자연과 인간의 슬기로운 공존' '모든 종교.이념 간 배타성 해소' '학문의 생활화' 에 대한 실현의지로 이어가는 부분은 특히 관심을 더한다.

이를 위해 그는 ▶종교는 신앙도, 신앙의 대상도 아니고▶종교의 주제가 신이 아니며▶종교는 제도조차 아니여야 한다는 역설을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서 도올은 만학도로 원광대에서 한의학을 전공하면서 접한 원불교의 정수, 즉 모든 종교와의 화해를 표방하고 실천하는 교리에서 하나의 대안을 발견하고 있는 듯하다.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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