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모의 작품세계] 감상주의 탈피 능동적 중국인상 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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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장이모는 첸 카이거(陳凱歌) 등과 함께 대표적인 중국 '5세대 감독' 으로 꼽힌다.

'5세대 감독' 이란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1966년 휴교령에 들어갔던 북경영화학교가 덩 샤오핑의 개혁 정책에 힘입어 1978년 다시 문을 연 후 입학한 82년 졸업생을 이른다.

이 학교 입학 당시 시안(西安)출신 장이모는 28살의 늦깍이였다.

나이 제한(22살)에 걸려 두차례나 입학이 거절당했으나 문화부장관에게 '문혁(文革)으로 10년을 허비했다' 는 내용의 편지를 구구절절히 써 보내 동기들보다 두달 늦게 촬영학과 입학허가를 받았다.

장감독의 데뷔작은 그로부터 10년뒤에 만든 궁리(鞏莉) 주연의 '붉은 수수밭' . 이듬해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1930년대를 시대배경으로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저항과 여성의 해방, 육체의 해방을 담았다.

화면 전체를 그림처럼 붉게 물들인 영상미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어 만든 '국두' (90년) '홍등' (91년)이 거푸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자 장감독은 국제적 명사로 떠올랐다.

그러나 정작 작품은 지나친 형식주의로 인해 사실적 관점을 놓쳤다는 평단의 맹폭을 받았다.

중국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침울한 감상주의로 일관하던 그가 자성의 몸짓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92년 '귀주이야기' 로 부터다.

관(官)을 상대로 벌이는 한 농촌일가의 소송사건을 통해 능동적 중국인상을 그렸고 장식적 색채도 생명력을 되찾았던 것. 그해 베니스영화제 금사자상을 받았다.

열악한 중국 농촌의 교육현실을 그려 올해 두번째로 베니스영화제 금사자상을 탄 '책상서랍속의 동화' (30일 개봉)도 그런 경향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 장감독은 배우나 오페라 연출가로서도 능하다.

영화 '낡은 우물' (97년)로 도쿄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탄 적이 있으며 97.98년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지휘 주빈 메타)의 연출을 맡기도 했다.

한때 궁리와는 부부였다.

내년 베를린 영화제를 목표로 '나의 아버지, 어머니' 란 신작을 촬영 중이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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