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탈락 부장판사 법관전용망에 올린 고별사 싸고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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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떠나고 싶은 마음은 진정 없습니다. 하나 떠나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소리가 어지럽습니다. "

한 중견 법관이 법원을 떠나며 법관전용 전산망에 올린 귀거래사(歸去來辭)가 법원 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A4용지 반쪽 분량의 짧은 글에 못내 아쉬운 마음을 담은 법관은 지난주 고법 부장 승진에서 탈락한 뒤 사직서를 낸 서울지법 민사합의15부 장용국(張容國.사시 17회.사진)부장판사.

이 고별사가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넉넉하다 할 수 없는 봉급에다 격무를 견디지 못하고 사직하는 법관들이 줄을 잇는 가운데 사명감을 갖고 끝까지 법원을 지키려는 능력있는 중견 법관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옷을 벗는 현실이 안타깝기 때문.

서울지법의 한 단독판사는 張부장판사의 글을 소개하며 "승진자의 인품과 능력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못지 않은 법관이 떠나기 싫은 법원을 떠나야 하는 것이 문제" 라고 말했다. 또다른 단독판사도 "승진에서 탈락하면 주변의 눈총 때문에 나가지 않을 수 없다.

승진제도는 헌법이 보장한 10년의 법관임기를 무시한 처사" 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승진을 좌우하는 인사평정에 대한 불만의 소리도 높았다.

서울고법의 한 배석판사는 "명단 발표가 날 때까지 아무도 모르는 인사평정 때문에 법관들이 눈치를 살피는 일이 생기게 마련" 이라며 "인사평정은 적어도 본인에게는 알려야 하지 않겠느냐" 고 비판했다.

"정든 법원, 그 높은 곳에서 저기…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갑니다. " 張부장은 법복을 벗는 심정을 이렇게 끝맺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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