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쌀, 북한 지원 검토 안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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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고위 당국자는 18일 “현 단계에서 북한에 쌀을 대규모로 지원하는 것은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와 맞지 않는다”며 “쌀 지원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일정 규모 이상의 쌀 지원은 남북관계 진전과 당국 간 협의가 있어야 한다”며 “특히 국내에 쌀이 남아돈다고 북한에 주는 방식으로는 처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북한이 지난 16일 개성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공식 요청한 대북 인도지원과 관련해 쌀보다는 옥수수·밀가루 위주로 5만t 미만의 소규모 지원을 시행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이 당국자는 이와 관련,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차관(10년 거치 20년 상환 조건) 형태로 제공했던 쌀 대북지원을 무상으로 전환하는 대신 분배 투명성을 높인다는 방침을 정해놓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짜로 주는 대신 군부 등에서 전용하는 일이 없도록 북한 당국이 모니터링(분배감시)을 보장해야 한다는 얘기다.

당국자는 또 이전 정부 수준의 대규모 지원(쌀은 연간 40만t, 비료는 20만~30만t 규모)을 하는 방안에 대해선 “순수 인도적 지원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정부는 지원품이 북한 고위층에 빼돌려지는 걸 막고 임산부와 영유아·노약자를 비롯한 취약계층에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정부는 인도적 지원의 경우 국제기구를 통하기보다는 직접 북한에 주는 쪽을 염두에 두고 있다. 국제기구 경유지원은 수송비 등 부대비용이 23%에 달하는 등 문제가 제기돼 왔다. 당국자는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인도적 지원 요청이 있었던 만큼 남북 간에 직접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며 “대한적십자사는 식량과 의약품을 지원했던 노하우가 축적돼 있다”고 설명했다.

지원 시기와 관련해서는 국내여론과 북한의 태도 등을 고려해 결정할 계획이다. 당국자는 “남측이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제안한 11월 이산상봉을 성사시키려 무리하게 지원 결정을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상봉장소를 금강산이 아닌 서울·평양으로 제안했기 때문에 겨울철 상봉도 문제가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정부는 언론보도와 23일 통일부 국정감사 등을 토대로 대북지원 여론을 파악해 이번 주 중 품목과 수량을 정할 방침이다. 통일부는 그동안 국제 구호기구와 국내 대북지원 민간단체로부터 식량지원에 나서라는 압박을 받아 왔다. 핵 실험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국면에서 지원재개는 곤란하다는 주장도 맞서고 있다. 북한의 식량사정과 관련해 당국자는 “냉해가 있었고 비료 부족 등으로 인해 지난해보다 작황이 좋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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