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일본 핵무장 발언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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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전 일본총리는 지난 74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수상 이유는 일본의 핵무기 제조.보유.반입을 금지한 '비핵(非核)3원칙' 을 확립해 핵무기 확산 방지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사토는 수상 기념강연에서 앞으로 일본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비핵3원칙은 지켜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비핵3원칙은 그후 일본의 국시(國是)라고 할 만큼 안보정책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 왔다.

사토가 총리로 재임하고 있을 때인 69년 일본 외무성이 "국익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 제조능력을 유지하고 이에 대한 주변국들의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 는 내용의 극비문서를 작성했던 사실이 94년 일본 언론에 의해 공개됐다.

이 무렵 한 미해군 퇴역장성이 "일본에 기항하는 미 군함은 통상적으로 핵무기를 제거하지 않는다" 고 폭로함으로써 비핵3원칙이 유명무실한 것임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일본이 핵개발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1년안에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음은 공개된 비밀이다.

한 나라가 핵무기를 생산하려면 몇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핵물질.기술.돈.핵실험 장소.핵무기 운반수단이 그것들이다.

일본은 핵실험 장소를 제외하곤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핵실험 장소도 실험 데이터만 충분히 확보하면 직접 핵실험을 않고 컴퓨터 시뮬레이션(모의실험)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일본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가장 주목하는 잠재적 핵개발국가로 IAEA 핵사찰 임무의 25% 이상이 일본에 집중돼 있다. 핵개발에 뛰어들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에 대한 안보의존이다.

주일(駐日)미군이 갖고 있는 핵 억지력은 유사시 일본을 적의 핵공격으로부터 지켜준다. 또 다른 이유는 국제사회로부터 받을 압력이다.

핵무기를 생산함으로써 국제사회로부터 받을 지탄과 국제적 고립이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도 일본이 미국의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안보를 해결해야 할 급박한 상황에 처한다면 구속력을 갖지 못할 것이다.

니시무라 신고(西村眞悟) 일본 방위청 차관이 밝힌 핵무장 검토 발언이 큰 파문을 일으키자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는 즉각 해임으로 진화에 나섰다.

니시무라는 대동아공영권 확대, 국군 창설까지 주장했다. 올들어 국기.국가법을 제정하고, 헌법 제9조(평화헌법) 개정을 위한 특별조사회를 내년부터 국회내에 설치하기로 하는 등 '보통국가' 를 표방하는 일본 우익의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니시무라는 일본이 외국에 '강간' 당하는 일을 막기 위해 핵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그는 과거 일본에 강간당했던 주변국들의 입장은 한번이라도 생각해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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