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김호길 '어둠이 날 에워싸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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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밀썰물 다 지나고

개펄만 드러나듯

하얗게 바랜 소라껍질

바람이 피리 불듯

그믐달 뻘밭에 내려

천만 갈래 쪼개지듯

- 김호길(56) '어둠이 날 에워싸고'

많은 시들은 달빛이 물 위에나 산비탈에 내려오는 것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 시는 그 달빛이 하필이면 썰물진 텅 빈 개펄에 내려오고 있다. 새삼 달밤의 황량함에 가슴이 저리다. 게다가 바랜 소라껍질에 스치는 바람소리가 있다. 신산스러운 삶에의 감회가 서슬져 있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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