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경제특보가 옳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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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호 02면

나이가 50을 넘은 요즘은 글을 읽어도 읽은 둥 만 둥 하다. 기억이 잘 나질 않고, 감흥도 별로 없다. 기껏(?) 기억나는 게 학창 시절에 읽은 것들이다. 그중 하나가 헤겔의 역사철학 서문에 있는 글이다. “경험과 역사가 가르치는 바는 이러하다. 국민과 정부는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고, 거기서 얻은 원칙에 따라 행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과문이겠지만, 나는 인간의 한계에 대해 이것 이상의 글을 보지 못했다. 그러니 역사의 오류와 인간의 실수가 늘 반복되는 게 아닐까.

김영욱의 경제세상

며칠 전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는 “출구전략을 쓰든 안 쓰든 세계경제는 더블딥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더블딥은 경기가 회복된 후 다시 침체되는 걸 일컫는다. 그러자 말들이 많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더블딥 가능성이 적다”고 하고, G20(주요 20개국)기획조정위원장은 “국제적 정책공조를 통해 피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강 특보 편이다. 옳은 얘기를 용기 있게 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더블딥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가능성이 적다고 하더라도 논쟁에 불을 지핀 건 잘했다.

미국에선 우리와 달리 지난봄부터 더블딥 논쟁이 활발하다(6월 28일자 이 칼럼 참조). 루비니 교수는 진작 ‘더블딥 필연론’을 주장했다. 출구전략을 쓰든, 안 쓰든 더블딥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재정지출을 줄이고 금리를 올리면 경기는 가라앉는다. 반대로 지출과 통화 공급을 늘려도 경기가 주저앉는다. ‘어느 순간’ 채권시장이 큰 충격을 받기 때문이다. 금리가 상승하면서 불황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더블딥을 막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G20 공조보다는 출구전략의 적절한 타이밍이 그것이다. 회복세가 자리 잡는 ‘어느 시점’에 출구전략을 펴면 된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버냉키 의장의 말이다. 루비니 교수도 ‘어느 순간’을 강조한다. 확장정책을 펴다가 ‘어느 시점’에 출구전략을 펴면 경기도 살리고, 인플레이션도 예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게 가능하냐는 점이다. 출구전략이라는 칼을 조금 일찍 또는 조금 늦게 빼들 가능성이 훨씬 더 클 것 같기에 하는 말이다. 타이밍 맞추는 게 얼마나 어려웠으면 버냉키 의장이 ‘예술’이라고까지 표현했을까. 용케 타이밍을 맞췄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판단과 실행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해 금리를 올렸는데, 실제로는 아니었다고 하자. 그래서 경기가 죽었다고 하자. 아마도 비난이 빗발치고, 책임론이 비등할 것이다. 이런 위험 부담을 감당하면서까지 용감하게 출구전략을 펼 정책 결정자는 극히 드물 것이다. 대부분 갈 데까지 간 후, 버블이 일어난 후에 출구전략을 쓰려고 할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을 포함해 지금까지 다섯 차례의 큰 불황이 있었다. 이 중에서 더블딥이 없었던 경우는 한 번뿐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더블딥 가능성이 크다. 경험과 역사에서 배운다면 분명히 그럴 것이다. 게다가 미국과 일본의 경제 전문가들 수준이 우리보다 낮지 않다. 그들이 몰라서 더블딥을 당한 건 아니라면 우리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설령 기획재정부 장관 말처럼 가능성이 낮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정부는 ‘낮은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선제적 정책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강 특보 말대로 더블딥이 불가피하다면 정부도 ‘출구전략 불가론’에서 달라져야 한다. 2차 침체에 대비하려면 정책적 여지를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 물론 지나치면 안 된다는 전제가 붙지만. 재정지출은 비용 대비 효과를 철저히 따져야 한다. 그럼으로써 불필요한 지출 항목은 과감히 삭감해 2차 침체에 대비해야 한다. 금리도 조금 올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야 다시 내릴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전문가들의 논쟁이 활발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려면 대통령이 앞장서 ‘출구전략은 시기상조’라고 강조해선 안 된다. 전문가들이 말문을 닫기 때문이다. 활발한 논쟁은 출구전략 타이밍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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