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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著 '세상의 바보들에게…' 번역 출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움베르토 에코(67)의 이름 앞에 붙는 수사는 다양하고 현란하다. 철학자.기호학자.역사학자.미학자 그리고 소설가…. 이탈리아 볼로냐 교수로 재직 중인 에코는 아퀴나스 철학에서 컴퓨터로 넘나드는 다양한 지식에다 '언어의 천재' 라 불릴 만큼 영어.불어는 물론 라틴어.그리스어.러시아어까지 해독하는 '지독함' 까지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그를 대중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소설 '장미의 이름' 에서는 치밀한 구성력과 글을 다루는 꼼꼼한 솜씨까지 보여준 바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 비틀어 보기' 란 부제가 붙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이세욱 옮김.열린책들.9천5백원)은 다양한 재질과 식견을 지닌 에코의 진면모를 만끽할 수 있는 칼럼 모음집이다.

패러디.유머.따끔한 비판 등이 환상적이고 자유로운 문체와 함께 어울리며 현대 생활의 세기말적 풍조에 일침을 가한다.

여기서 에코가 선택하고 있는 소재들은 유무형의 문명 소도구들. 팩스.휴대폰.휴가.도서관.TV.기차에서 반박하기.서문쓰기.여행하기.세관통과하기 등 일상의 다양한 행태가 망라된다.

그는 이들을 일기 형식이란 큰 범위 안에서 소설기법.수필기법.우화.공상과학적 요소를 삽입시킨 채 세상을 향한 따끔한 메시지로 전환시킨다.

이런 과정 속에서 그는 허를 찔린 듯한 웃음을 선사하는 유머작가가 되기도 하고 분석적인 논객이 돼 상대방의 얼을 빼놓는가 하면 장난기 어린 익살로 썰렁한 상황만들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휴대폰에 관한 단상 한 대목. 휴대폰을 가져도 정당한 사람은 세 부류다. 장애자와 업무상 긴급사태에 급히 대처해야 하는 직종(예:소방서장.장기 이식 전문의)그리고 내연의 연인이다. 이들은 설령 영화관이나 장례식장에서 전화를 받아도 용납된다.

급한 직종과 장애인은 그들의 상황만으로도 휴대폰이 용인되고 내연의 커플은 조심스러워 떠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금 헤어진 친구와 하찮은 화제를 놓고 소리를 지르거나 대단히 긴급한 업무로 전화가 걸려온 듯 폼을 잡는 인간은 위험한 자들이다.

에코의 눈에 그들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인간, 섹스를 하다가도 상사가 부르면 차렷 자세를 해야할 한심한 인간으로 분류된다.

이처럼 에코의 붓자루에 걸린 대상들은 독설과 위트를 통해 비틀어지고 단련되면서 우스꽝스런 모습을 한 우리에게 어리석음을 되돌아볼 기회를 주고 있다.

정신적 평정을 유지하고 힘든 사람들일수록 깊은 명상에 잠기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심각해지지 말라" 는 에코의 말에 기대어 일상 속에서 유머로 교훈을 얻어도 좋을 듯 싶다.

이 책은 94년 출간됐다 절판된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 과 맥을 같이 한다. 그 책에 담긴 글과 함께 2백여 쪽을 늘이고 번역도 미국판 대신 에코가 직접 참여한 프랑스판을 대본으로 삼았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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