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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죽음'도와주는 호스피스 말기환자엔 최선의 선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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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생명이 얼마남지 않은 말기환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은 호스피스. 비록 생존기간을 연장할 순 없지만 통증을 극복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호스피스는 걸음마 단계. 일반인들의 오해도 많다. 최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럽호스피스.완화(緩和)의료학회의 발표내용들을 살펴본다.

◇ 편견에서 벗어나야〓아직도 호스피스를 장례 치르는 곳이나 안락사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국내에서도 해마다 4만여 명의 말기암환자들이 통증으로 병원 응급실과 집을 헤매다 숨진다.

호스피스 연구의 권위자로 영국에딘버러의대 명예교수를 지낸 데렉 도일박사는 "호스피스는 편안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적극적인 의료행위" 라고 강조했다.

일부러 환자의 죽음을 재촉하는 안락사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란 것. 카톨릭 등 특정종교와도 물론 관련이 없다. 치료수단이 없는 말기환자들이면 누구나 호스피스 대상이 된다.

그러나 죽음 직전까지 정맥주사를 꽂고 있는 등 불필요한 치료행위는 삼가야한다. 도일박사는 "한국의 경우 호스피스를 표방하는 병원에서도 환자는 여러 군데 주사 바늘이 꽂힌 채 온종일 누워 지낸다" 며 "진정한 호스피스는 불필요한 모든 치료를 배제하고 말 그대로 환자를 편하고 자유롭게 해주는 것" 이라고 비판했다.

◇ 마약을 아끼지 말아야〓몰핀 등 마약은 호스피스 치료의 핵심. 마약중독 등 부정적 인식을 버려야한다. 오스트레일리아 플린더스의대 석좌교수 이안 매덕스교수는 "말기환자들에게 마약중독을 걱정하는 것은 넌센스" 라고 강조했다.

일반인과 달리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말기환자들에게 마약중독은 극히 드물게 나타날 뿐 더러 나타난다 하더라도 얼마남지 않은 여생을 감안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통증이 극심하다면 몰핀주사 100대분에 해당하는 마약을 하루만에 투여할 수도 있다는 것. 현재 국내에 시판 중인 마약은 몰핀주사 외에 먹는 마약인 MS콘틴과 붙이는 패치제 듀로제식이 있다.

영국 사우스햄프턴의대 완화의학과 캐럴 데이비스박사는 "듀로제식은 음식물을 삼키지 못하는 환자에게 유용하며 마약사용시 가장 큰 부작용인 변비가 적다는 것이 장점" 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1장당 1만원으로 비싼 것이 흠.

◇ 속효성 마약이 필요하다〓효과가 빨리 나타나는 속효성 마약의 국내도입이 시급하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가정방문 호스피스진료를 하고 있는 서울 전.진.상의원 배현정원장은 "선진국에서 널리 쓰이는 시럽형 몰핀이 빨리 시판되어야 한다" 고 말했다.

시럽형 몰핀은 복용 후 15분 이내 효과가 나타나는 대표적 속효성 마약. 반면 MS콘틴은 복용 후 3시간이 지나야 효과가 나타나 12시간 지속 되며 듀로제식은 8시간 후 나타나 72시간 동안 지속 된다.

효과는 오래 가지만 투여 즉시 나타나지 않으므로 급성통증을 호소하는 말기환자에겐 속수무책이다. 병원에서 사용가능한 몰핀 주사도 속효성이긴 하지만 의료기관을 일일이 방문해 주사를 맞아야해 불편하다.

◇ 제도적 지원도 있어야〓국내 호스피스 전문가가 태부족한 것이 문제. 이번 학회 집행이사로 참여한 카톨릭의대 여의도성모병원 종양내과 홍영선(洪瑩善)교수는 "영국.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홍콩에서 이미 호스피스 전문의 제도가 운영 중이며 미국 등 다른 선진국에도 곧 도입될 예정" 이라며 "우리 나라에서도 호스피스 전문의 제도가 필요하다" 고 역설했다.

마약처방이나 호스피스 병동에 대한 의보당국의 지원도 절실하다. 洪교수는 "마약을 처방하면 과잉진료로 분류해 삭감되기 일쑤" 라며 "검진.치료가 필요없어 진료수익이 거의 없는 호스피스병동이 일반병동과 동일하게 의료수가가 적용되는 바람에 말기환자들은 의료계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실정" 이라고 설명했다.

제네바〓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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