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밝혀야 할 도·감청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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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언론탄압 사태와 관련해 중앙일보관계자가 팩시밀리로 국제언론인협회(IPI)에 보낸 편지의 사본을 국민회의측이 입수하게 된 경위가 의심스럽다.

국민회의 최재승(崔在昇)의원은 문화관광위 국정감사에서 중앙일보에 대한 언론탄압이 문제되자 오히려 언론사대주의니 국가원수 모독 운운하며 중앙일보를 비난하고, 중앙일보 편지의 사본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편지의 입수처를 공개할 수 없다고 했지만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장관은 IPI본부가 IPI한국위원회 관계자에게 전달했으며 그 관계자가 자신에게 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앙일보가 IPI 본부와 한국위원회에 확인한 결과, 이들 두 기관은 이를 모두 부인했다.

그렇다면 청와대 관계자까지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편지 사본은 어떻게 이들 손에 들어가게 됐는가.

우리는 정부기관의 도청에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편지를 작성하고 전달받은 인물들이 외부에 유출하지 않았다면 다른 가능성은 뻔한 것 아닌가.

정부기관이 외국과 연결된 통신망을 24시간 감시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팩시밀리로 나가는 중앙일보 편지 내용을 포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우리 생각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보통 일이 아니다. 정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불법감청이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자 관계장관들의 담화와 신문광고까지 동원해 통신감청은 법에 의해 엄정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불법감청은 없다고 공언해왔다.

그러나 중앙일보 편지의 경우는 이런 정부의 공언이 거짓일 가능성이 큼을 보여주는 것이다. 중앙일보가 IPI에 보낸 편지 내용은 통신비밀보호법이 통신제한조치 대상으로 정한 마약밀수나 유괴 등 범죄에 해당하는 것도 아니고 국가안보와 관련된 것도 아니다.

그런 편지가 설명되지 않는 경로로 정부의 손에 들어갔다는 것은 정부가 마구잡이 도청을 하고 있다는 방증(傍證)이 아니겠는가.

정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정치인.재계인사.공직자.언론인 등 사회 유력인사들이 전화통화를 꺼리고 남의 이름까지 이용해 핸드폰을 장만하는 이유는 뻔한 것이다. 정부의 장담은 말뿐이요,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우리는 중앙일보 편지가 정부측에 입수된 사태를 보더라도 각종 수사목적 외에도 정보 파악을 위해 정부가 광범위한 감청과 도청을 하고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쪽에서는 '안심하고 통화하라' 고 하면서, 한편에서는 감청대상도 아닌 편지 내용을 파악한 사실을 정부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통신비밀과 사생활의 보호에 국경구분이 있을 수 없다. 스스로 '인권정부' 임을 내세우는 정부가 국제 통신을 낱낱이 감시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는 것은 국제문제화될 수도 있는 사안이다.

정부와 여당은 중앙일보의 통신내용을 어떻게 입수하게 됐는지 경위를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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