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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창훈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⑬ 해대리(海大 ·붕장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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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눈이 크고 배 안이 검은 색이다. 맛이 좋다.

손암 정약전 선생의 설명은 달랑 이것뿐이다. 꼼꼼하신 양반이 왜 이러셨을까. 더구나 '맛이 좋다'고까지 하셨는데 말이다. 이거 이상 알 수 없으셨던 것이다. 장어의 생리는 비밀에 가깝다. 수족관 속에 음침하게 누워있는 장어를 보고 있자면 별 다섯 개짜리 기밀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양식도 할 수 없다.

오래전 충청도 서해안에서 살 때였다. 옆방에 현이네가 살았다. 현이 엄마는 대단한 미인이었다. 시내를 걸어가면 사람들이 다 뒤돌아보았다. 현이 아빠는 그렇지 못했다. 트럭 운전을 하던 그는 벌이도 시원치 않았다.

현이 엄마가 둘째를 낳자 먼 경상도 땅에서 친정 어머니가 산후조리를 해주러 오셨다. 당시 현이 아빠는 일을 쉬고 있었다. 쉰다고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일자리를 잃은 듯했다. 문제는 단칸방이라는 것. 작은 방 하나에서 세 식구 더하기 갓난아이, 더하기 할머니, 이렇게 다섯이 지내야 했다.

장모가 오는 날부터 현이 아빠는 밤낚시를 다녔다. 사위 보는 눈빛이 편치 않다는 것은 첫날부터 짐작할 수 있었다. 결혼을 반대당하자 무작정 첫 아이부터 가졌다는 말은 그 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현이 아빠가 저녁을 먹고 나가면 모녀의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이게 뭐꼬. 이게 사는 기라고 니 이렇게 살고 있나.”

“앞으로 잘 살기다.”

“지금은 와 잘 못사노. 둘째는 또 와 가졌노.”

“그기 맘대로 되나.”

모녀는 주위 눈치를 살피며 눈시울을 찍어냈다. 어머니의 눈물이 더 진하고 오래갔다. 그녀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기어이 한마디 더했다.

“니, 지금 가도 더 잘 갈 수 있다.”

“어떻게 시집을 또 가노.”

아침에 현이 아빠가 잡아오는 것은 붕장어였다. 서해안은 붕장어 낚시터가 잘 발달돼 있다. 이 녀석들이 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밤을 새워 낚아온 것이라 양도 적잖았다. 그는 묵묵하게 장어를 손질하고 소금과 양념을 발라 구웠다. 고기반찬의 아침 밥상인데 아무도 말이 없었다. 견디다 못한 현이 엄마가 입을 열었다.

“싱싱해서 더 맛있네. 엄마 좀 무 봐라. 애써서 잡아왔다 아이가.”

어머니는 대답을 안 했다. 산후조리 기간은 짧지 않다. 현이 아빠는 날마다 낚시를 다녔고 날마다 장어를 구웠다. 날마다 딸이 권했고 날마다 어머니는 안 먹었다. 대신 내가 얻어먹곤 했다. 그렇게 여러 날이 갔다. 끈질기게 낚고 끈질기게 권하니 한두 점 안 먹을 수 없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비로소 한 마디 나왔다.

“맛있기는 하네.”

현이 아빠가 스페어 기사로 사흘간 타지를 다녀왔다. 그가 온 날 현이 엄마가 말했다.

“당신 장어 낚으러 안 가냐고 엄마가 물어본다.”

장어는 맛이 좋다. 회나 탕, 구이 모두 뛰어나다. 보양제로 쓰인다는 것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어렸을 때 봤던 풍경 중에 잊지 못하는 게 있다. 어른들이 자신의 종아리 굵기 만한 붕장어를 낚아오던 모습이다. 가마솥에 탕을 끓이면 기다리는 사람들은 모두 입이 벌어졌다.

장어는 끓일수록 진한 맛이 우러난다. 더 끓이면 살이 풀어져 수프처럼 된다. 이빨이 쩍쩍 달라붙을 정도이다. 곧바로 기운도 뻗친다. 이십대 후반, 객지 공사판을 떠돌아다닐 때 허기가 지면 떠오르는 것이 그 붕장어탕이었다. 사먹을 곳이 없기에 떠오를 때마다 괴로웠다.

그 정도 되는 것을 낚으려면 거문도에서는 배를 타고 등대 아래나 백도 근처로 간다. 이모부 따라 나도 몇 번 간 적이 있다. 삼치 바늘에 스테이크 만들 정도의 고등어 살을 꿰어 던진다. 물살이 강해 추도 아주 무거운 것을 쓴다. 이 채비에 간혹 돗돔이 문다.

이모부도 몇 년 전에 1m50㎝짜리 돗돔을 낚았다. 포를 떠 냉동해 놓고 혼자 두고두고 먹었단다. 그는 또 안개 낀 여름밤에 엔진고장으로 표류를 하여 사흘 만에 제주도에 도착한 적도 있다. 모두 장어 낚시 때문에 생긴 일이다. 지금은 은퇴하여 수원에서 사신다.

해안에서 원투 낚시로도 잡을 수 있다. 밤낚시가 유리하다. 지렁이나 꼴뚜기 따위를 미끼로 쓰는데 고등어 살이 가장 낫다. 한쪽 포를 뜬 다음 껍질째 직사각형으로 잘라 끼우면 된다. 붕장어는 우리가 흔히 아나고라고 부르는 것이다. 장어통발 배가 일 년 사시 잡는다. 여수의 특산품 중 하나가 이 장어탕이다. 남산동에 가면 장어탕 골목이 있다. 어느 식당에 가나 고소하고 쫄깃한 장어 맛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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