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오탁번 '우포늪'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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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포늪이 토해내는 울음소리를 듣고

귀밝은 하늘이 내려왔다

그 후 하늘은

1억4천만년동안

하늘로 올라갈 생각은 영 않고

우포늪에서 살고있다

흰뺨검둥오리 알이

하늘빛을 띠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미하는 실잠자리들이

물수제비 그리며

우포늪을 간지럽힌다

먼 북극의 빙하가

늦잠자는 하늘을 깨우느라고

바다로 뚝 떨어진다

산란하는 붕어가

물풀사이로 숨는다

- 오탁번(56) '우포늪'

새삼 천지가 휑뎅그렁해진다. 저 경남 우포늪쯤이면 그곳의 물풀들을 먼저 말할 법도 하건만 한 주제를 가진 시인지라 빙하기와 빙하기 사이의 염원에 의해 1억4천만년이라는 초시간이 개입한다.

하지만 우포 물위의 물오리와 그 알이 있고 실잠자리들과 붕어들도 있다. 그런 오래된 정적 속에 북극의 빙하라는 이미지와 바다 이미지가 정작 그 크기에도 불구하고 소도구로 쓰이고 있다. 울림이기보다 새김의 시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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