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 곰리
◆내가 주인공이다=런던시는 2005년부터 트래펄가 광장에 있는 동상 받침대를 예술작품을 위해 활용해왔다. 올해는 ‘보통 사람들의 참여로 작품을 완성하겠다’는 곰리의 제안이 채택됐다. 100일(총 2400시간)동안 하루종일 매시간마다 한 명씩 릴레이로 기념비 받침대에 올라가 무엇이든 한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도내에서다. 16세 이상이면 영국에 사는 사람 누구나 홈페이지(www.oneandother.co.uk)에서 신청할 수 있다. 참가자는 컴퓨터가 지원자의 출신 지역과 나이·성별 등을 안배해 선정했다.
프로젝트엔 뉴미디어도 적극 참여했다. SKY ARTS 방송은 이를 웹캠으로 촬영해 홈페이지에 생중계했고 TV채널을 통해서는 하일라이트를 모아 방영했다. 관람객들은 작품에 대한 감상을 트위터로 주고 받았다. 13일 현재까지 홈페이지 방문자는 730만명. 참가 신청자가 3만4000여명이었던 이 프로젝트는 14일 2400번째 주인공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기자가 찾아갔을 때 40대 후반의 한 남성은 대낮에 노트북 컴퓨터와 앰프를 갖고 올라가 1시간 동안 음악을 틀고 춤을 추었다. ‘인생을 즐기자’란 표어가 인쇄된 티셔츠를 단위에서 갈아입었다. 그의 ‘1시간’이 끝나자 다음 차례인 젊은 남성은 연극 홍보 피켓을 들고 1시간 내내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앉아 있었다. 그동안 받침대 위에 올라간 사람들의 행태는 각양각색이었다. 누군가는 체조를 했다. 뜨개질만 하다가 돌아간 사람도 있다. 사랑 고백을 하는 사람, 시위하는 사람도 있었다. ‘누드 사건’도 여러 차례 발생했다. 이곳에서 만난 직장인 매튜 호웰(33)는 “매일 점심 시간에 나와 구경하는데 어제는 참가자가 옷을 홀딱 벗었다”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알몸을 보이는게 불법이 아니다.
지난 100일간 영국 트래펄가 광장의 ‘네 번째 받침대’위에서 열린 ‘원 앤 아더’ 프로젝트의 한 장면. 한 참가자가 아동보호 단체의 홍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런던=연합뉴스]
평론가 알렉스 니드함은 “곰리의 프로젝트가 때로는 지루했지만 영국의 창조성은 그런 ‘순수한 지루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줬다”고 말했다.
곰리는 충분히 목표를 달성했다는 입장이다. 그는 “내게는 찬반이 뒤섞인 반응을 얻지 못하는 것, 그게 실패”라고 말했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는 13일 “별나고 멋진 영국문화의 단면을 보여줬다”며 ‘원 앤 아더’ 프로젝트의 이모저모를 자세히 소개했다.
런던=이은주 기자
◆트래펄가 광장의 네 번째 받침대(The Fourth Plinth)=광장의 네 모퉁이 중 북서쪽에 위치한 기념비 받침대. 다른 3곳에는 조지 4세 등 위인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1841년 윌리엄 4세 동상을 세우기 위해 만들었으나 재정 부족으로 완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런던시는 1999년부터 이 받침대 위에 현대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방안을 추진해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네 번째 받침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첫 작품은 구족 화가이자 두 팔이 없는 장애인 여성 앨리슨 래퍼의 임신 조각상(마크 퀸 작품·2005~2007년)이었다. 이어 독일 예술가 토마스 쉬테의 ‘호텔을 위한 모델’의 건축 모형(2007~2009년)이 전시됐다.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59)=영국 런던 출생.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인류학과 역사학 전공. 3년 간 인도·스리랑카 등지를 여행하고 돌아와 골드스미스·슬레이드 예술대에서 아트를 전공했다. 몸을 기억과 변형의 장소로 탐구, 종종 자신의 몸을 도구·재료로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994년 터너상 수상. 대표작으로 ‘북방의 천사(The Angel of the North)’, ‘또 다른 장소(Another Place)’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