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감장에서 재연된 죽창의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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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어제 아침신문 1면에 실린 사진 한 장이 충격적이다. 경찰청 국감에서 이인기 의원이 시위대가 죽창으로 경찰을 공격하는 상황을 재연한 것이다. 원래 죽창은 대나무 끝을 날카롭게 자른 것이다. 그런데 이날 보인 ‘신형 죽창’은 끝을 여러 가닥으로 쪼갠 것이다. 이 죽창은 지난 5월 화물연대의 대전 시위에서 처음 등장했다. 날카로운 끝 가닥이 철사로 엮어진 경찰헬멧 앞창을 바늘처럼 파고들곤 했다. 눈이 찔리면 실명 위험이 크고 얼굴을 다치면 상처가 크게 남는다. 당시 시위에선 죽창 등으로 인해 경찰 100여 명이 부상했다.

G20 나라 중에 시위대가 이런 살벌한 무기를 마음 놓고 경찰에 휘두르는 국가는 없다. 그리고 국감장에서 온 국민 앞에 이런 충격적인 장면을 시연(試演)해야 하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찾기 힘들다. 지난해 촛불사태를 포함해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불법·폭력 시위에 시달려왔다. 용산사태만 해도 농성자들이 새총으로 화염병을 쏘아대는 극단적 행동만 없었다면 그런 참사로 이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어제 부산에선 ‘5·3 동의대 사건’으로 순직한 경찰관들을 위해 추모비가 세워졌다. 사건 발생 20년 만이다. 1989년 5월 농성 대학생들이 동의대 중앙도서관에 경찰관 5명을 붙잡아 놓았다. 경찰이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학생들을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경찰 7명이 숨졌다. 김대중 정권이었던 2002년 농성 학생들은 민주화 운동자로 인정받아 보상금을 받았다. 반면 공무를 집행하다 순직한 경찰관들은 보상도 받지 못했고 추모비조차 없어 유족의 상처는 더 컸다. 제막식에서 유족대표 정유환씨는 “지난 정권 10년 동안 유가족은 지은 죄도 없이 죄인처럼 살아왔다”고 말했다. 강희락 경찰청장은 지난 5월 “동의대 사건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전도돼 고인들의 희생이 빛을 잃는데도 시대상황을 핑계로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점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고 사죄했다. ‘국감장의 죽창’ 사진과 동의대 사태 순직경찰 추모비는 시위문화 개선과 법질서 확립을 위한 사회의 부적(符籍)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