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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레터] '콘텐츠'를 '꾸림정보'로? 글쎄, 아무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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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국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듯합니다. 몇 년 전 일본에서는 『소리 내서 읽고 싶은 일본어』라는 책이 대단한 관심을 끌었답니다. 일본어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 책입니다. 그리고 지금 영국과 미국에서는 『Eats, Shoots & Leaves』(린 트러스 지음)라는 책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 있습니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구두점 사용’정도로 옮겨지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영어 사용에 좀 더 신중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참으로 재미없을 듯한 이 책이 즐겨 읽히는 것은 그만큼 영어가 혼탁해졌다는 뜻이겠지요.

독일도 지금 언어 문제로 혼란에 빠진 듯합니다. 6년 전에 독일 정부가 독일어를 읽기 쉽고 쓰기 쉽게 개선하기 위해 내놓은 새로운 철자법이 지식인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닥쳐 폐기될 위기에 처했답니다. 독일 굴지의 출판 그룹인 악셀 슈프링거와 슈피겔이 “철자를 바꾸려는 정부의 노력이 혼란을 부추기는 어리석은 짓”이라며 옛 철자법으로 돌아간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귄터 그라스를 포함한 일부 작가도 자신들의 작품은 절대로 새 철자법으로 낼 수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언어 습관을 바꾸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지요.

때마침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콘텐츠(contents)’의 대체어로 ‘꾸림정보’를 내놓았군요. 다음엔 ‘네티즌(netizen)’의 대체어를 마련하겠답니다. 그런데 과연 ‘꾸림정보’가 ‘콘텐츠’를 대신할 수 있을까요. 그러기에는 콘텐츠와 네티즌이라는 단어가 뿌리를 너무 깊이 내렸습니다. 우리말 지킴이라면 시민의 언어 사용에 민감해야겠지요. 여러 해 전에 ‘꾸림정보’가 나왔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지 모를 일입니다.

아름다운 우리 말을 구사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지난해 세상을 떠난 이오덕 선생의 『우리말 살려쓰기』(아리랑나라)를 권합니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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