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예술과 정치-정명훈의 경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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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여권에서 추진하고 있는 신당 발기인 명단에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지휘자 정명훈의 이름이 올라 논란이 일고 있다.

정치의 권역 (圈域) 밖에 있는 음악가가 정당의 창당에 이름을 내준 사실이 당사자의 명예에 플러스가 되는지 마이너스가 되는지는 알 수 없다.

또 그러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음악가의 이름을 발기인 명단에 올린 사실이 신당의 이미지에 득이 될지 실 (失) 이 될지도 얼른 판단이 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정치는 예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예술은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정치가도 예술에 관심을 가질 수 있고 그와같이, 아니 그 이상으로 예술가도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으며 가져서 좋다.

야당의 비난에 대해서 여당이 방패막이로 내세운 이탈리아의 음악가 베르디만이 정치에 참여한 예술가는 아니다.

근래에도 빌리 브란트가 독일사회민주당 총리후보로 총선에 재차 도전했을 때 '양철북' 의 작가 귄터 그라스가 앞장서서 노벨문학상을 탄 하인리히 뵐, 작곡가 한스 베르너 헨체 등이 유권자 발의 (이니셔티브) 운동을 조직하여 적극적으로 선거 캠페인에 참여한 일이 있다.

소설가 그라스는 그 뒤 13년 집권한 사민당 정권이 무너지자 그때 정식 당원으로 입당하기까지 했다.

정치는 현대의 운명이요, 정치 참여는 시민사회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도 정치로부터 해방될 수는 없다.

히틀러를 증오하며 바이로이트와 잘츠부르크 예술제의 지휘를 거부한 토스카니니만 정치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히틀러 밑에서 계속 베를린 필하모니를 지휘한 푸르트벵글러도, 또는 나치스 제3제국의 음악평의회 총재를 지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도 그 나름대로 정치에 참여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베르디나 그라스, 토스카니니나 슈트라우스가 정치가가 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히틀러가 바그너를 좋아했다고 해서 음악가가 된 것이 아니고, 대통령 김대중 (金大中) 이 판소리를 좋아한다고 해서 국악인이 된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한 예술가가 어떤 정당, 어떤 정치가를 좋아하느냐 하는 것이 전적으로 그 개인의 자유인 것처럼 한 정치가가 어떤 음악, 어떤 예술가를 좋아하든 그것 역시 전적으로 그 개인의 자유에 속한다.

정명훈은 얼마든지 정치가 김대중을 좋아할 자유가 있고 또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으리라 본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서 부언하자면 브란트.김대중 두 정치가는 국내에서보다도 국외에서 훨씬 높은 평가를 받아온 사람이다.

핍박받던 야당 지도자 김대중에 대해서 국내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침묵함으로써 그에 대한 비방.박해에 동조했던 시절에도 해외에서는 정치에 별 관심없는 교포들조차 그를 내놓고 지지한 사람들이 많았다.

음악가 정명훈이 그런 사람들 속에 끼어 있지 말라는 법은 없고 끼어 있었다고 해서 논란될 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리고 특히 한국적인 풍토에서 강조돼야 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가와 예술가는 다른 영역의 사람들이요, 정치의 척도와 예술의 척도는 달라야 된다는 것이다.

'서편제' 를 대통령이 또 국무총리가 보았다는 것이 그 영화작품의 질을 높여주는 것이 아닌 것처럼 조수미가 또는 앙드레 김이 어느 정당을 지지한다고 해서 그 정당의 신뢰도를 높여주는 것도 아니다.

하나를 잘 한다고 해서 다른 것도 다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윤이상 (尹伊桑) 의 음악작품이 좋다고 해서 그의 대북관 (對北觀) 이나 통일론도 좋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독일에는 예술가의 정치적 치매 (퀸스틀러나르하이트) 란 말이 있다.

정치적으로 엉뚱한 짓을 하는 것은 2류, 3류의 어설픈 예술가라서가 아니라 제1급의 예술가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예술가의 정치적 실책에 대해선 그런 인식 위에서 관대하게 보아주자는 뜻도 된다.

그것은 또한 어느 나라에서나 더 흔히 보게되는 정치가의 예술적 치매에 대해서도 관대히 보아 줄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나는 정명훈을 평가한다.

나는 그가 대통령 김대중이 아니라 박해받던 야당 지도자 시절에 그를 내놓고 지지했다면 더욱 평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명훈은 역시 정명훈이다.

며칠 전 그는 MBC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항간의 모든 의구를 말끔히 씻어주는 절묘한 한마디를 내뱉어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아, 내가 얼마나 지휘를 못하면 정치가가 될 생각을…. " 암, 그렇고 말고. 그가 얼마나 지휘를 잘 하고 있는데!

崔禎鎬 울산대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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