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총선 열풍…'표밭갈이' 바쁜 의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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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6대 총선이 6개월이나 남았지만 전국은 이미 선거열풍에 휩싸여 있다.

지난 10일부터 정기국회가 개회 중이지만 의원들의 관심은 온통 지역구에만 쏠려 있다.

요즘 평일에도 의원회관에서 의원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지역구에 내려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접전지역은 안양. 지난 12일 오전 9시 안양 범계초등학교에서 열린 안양시 조기축구대회에는 김일주 (안양 만안.자민련). 최희준 (안양 동안갑.국민회의) .이석현 (안양 동안을.국민회의) 등 현역의원 3명을 포함한 각당의 지구당위원장 8명이 모였다.

이들은 서로 어색한 눈길을 주고받으면서도 각자 준비한 음료수 등을 돌리며 참석자들에게 눈도장을 찍기에 바빴다.

2시간 뒤 다른 지역 체육대회에서도 이들은 또한번 만나야 했다.

주부들을 상대로 한 단체관광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관광버스 안에서 입당원서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행선지는 가평.포천.치악산.오대산 등 다양하다.

지역구 관리에 소홀했다는 평을 들었던 한 의원은 매일 오전 당원들과 50여통의 전화를 한다.

다른 의원은 생일축하 문구가 적힌 의정활동 보고서를 보내 타당 지구당위원장의 반발을 샀다.

병원 영안실에는 각당 후보들이 보낸 1만5천원짜리 향초세트를 흔히 볼 수 있으며, 부의금은 지구당 사무국장 이름으로 내거나 아예 상주를 따로 불러내 봉투없이 3만~5만원을 호주머니에 찔러주는 일까지 있다.

한 원외위원장은 "지난해 선관위에 연 지출액을 6천여만원으로 신고했지만 솔직히 1억원은 썼다.

선거철인 요즘 웬만한 후보들은 적어도 매달 3천만~4천만원은 쓸 것" 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동사무소를 통해 전달하게 돼있는 수해의연품을 총선 출마 예상자가 직접 나눠주는 경우도 있다.

인천지역의 초선 의원은 "야당측이 지난 수해 때 7개 동에 가구당 5만원어치 이상의 물품을 직접 뿌렸다" 며 "1억원 정도 쓴 것 같다" 고 우려했다.

기업이나 병원 소유자는 개업 등을 구실로 각종 행사를 열고 있다.

영남지역의 한 한나라당 의원은 최근 자신의 병원 개업기념일을 맞아 유지 초청 기념만찬.운동회.노인잔치 등 병원 명의의 행사를 5, 6차례 치렀다.

유권자들이 예상 후보들에게 돈쓰기를 반 (半) 강요하는 경우도 많다.

수도권의 한 초선 여당 의원은 "각종 지역단체가 나에게 명예총재.고문 등 직함을 주고는 행사에 나와서 인사하라고 한다" 며 "이 경우 수십만원의 식사비는 내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고 토로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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