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태권도] 울어버린 대만 태권 처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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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 태권도 돌풍이 불어닥쳤다. 27일 새벽(한국시간) 남자 58㎏급 주무옌(22)과 여자 49㎏급 천스신(26)이 금메달 두개를 따내면서다. 올림픽 사상 대만의 첫 금메달이었고, 대만의 주요 일간지들은 일제히 1면 톱기사로 보도했다.

▶ 천스신이 시상대에서 울면서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아테네 AP=연합]

특히 소녀 시절 가출 경험이 있는 천스신의 스토리가 집중적으로 소개됐다. 천스신은 도장을 운영하던 아버지에게서 태권도를 배운 뒤 사상 최연소인 14세에 월드 챔피언 자리에 오르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성공에 대한 부담감을 감당 못하고 17세 때 집을 뛰쳐나가 태권도와 담을 쌓고 지냈다. 방황하던 그는 그러나 불효자의 이야기를 다룬 한 TV 프로그램을 보고 3년 만에 귀가했고, 마음을 다잡은 뒤 다시 매트 위에 섰다. 구슬땀을 흘린 끝에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내면서 대만의 간판스타로 떠올랐다. 2003년부터 국내외 대회에서 거둔 성적은 23연승.

그러나 금메달을 목에 걸 때만 해도 환하게 웃던 천스신은 대만 국기 대신 대만올림픽위원회기가 게양되고 대만 국가 대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국기가(Song of the national flag)'가 울려퍼지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첫 금메달의 영광을 안긴 순간 드러난 조국의 허약한 위상이 불현듯 설움으로 복받친 것이었을까. 그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허공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천스신은 기자회견장에서도 말문을 잇지 못했다. 대신 주무옌이 입을 열었다. 자신들을 중국 선수로 생각할지 모를 서방기자들을 의식한 듯 또박또박 영어로 "나는 대만에서 왔습니다(I'm from Taiwan)"라고.

아테네=허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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