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그때 오늘

‘영어의 모든 것’ 옥스퍼드 영어사전, 초판 간행까지 71년 걸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5면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편찬한 리처드 체네빅스 트렌치. 그가 천명한 사전 편찬 방침은 표제어 하나하나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개념사’를 담아내자는 것이었다.

19세기에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었던 영국은 전 세계에 유니언 잭을 휘날렸고, 대영제국의 팽창에 따라 영어도 전 지구에 확대 보급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문화적으로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에 뒤지고 있던 영국은 문화에서도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시도의 일환으로 영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1857년 11월 5일 연설에서 시인이자 성공회 주교인 리처드 체네빅스 트렌치(1807~86)가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찬 방침을 밝혔다.

편찬 방침의 핵심은 한 어휘가 태어나 성장하고 사라지는 전 과정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각 어휘가 태어나고 성장하고 사라지는 일생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 어휘가 처음 사용된 문헌과 저자를 밝히고 그 문장을 인용문으로 실어야 했다. 이뿐만 아니라 그 어휘가 탄생한 후 어떻게 의미가 변천되었는지를 인용문과 함께 일일이 밝혀야 했다. 같은 어휘가 여러 가지 뜻을 가지기도 하고, 그 뜻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역사적 원리에 입각한(Based on Historical Principles)’ 사전 편찬 방침이다. 트렌치는 어휘의 의미의 역사, 즉 각 어휘의 일생을 펼쳐 보이는 사전을 구상했는데, 그것은 영어로 된 ‘모든’ 문헌을 읽어야 함을 의미했다. 이 어마어마한 계획은 어느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아니 사전 편집자 수십 명의 힘을 동원하더라도 실현될 수 없는 것이었다. 영어로 쓰인 문학 작품 ‘전부’를 검토하고, 런던과 뉴욕의 신문·잡지·학술지를 샅샅이 검토하는 일은 수많은 사람의 작업을 하나로 엮어내는 대역사였다. 그야말로 엄청난 규모의 협력체제가 가동돼야 했고, 실제로 보수를 받지 않는 수백 명의 자원봉사자가 작업에 참여했다.

1928년 초판(전 10권)이 완성되었다. 1884년 제1권이 간행된 뒤 44년이 걸렸고, 트렌치 주교의 1857년 연설이 있은 지 71년 만의 일이었다. 1989년에는 2판(전 20권)이 간행되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표방하는 ‘세계 최고의 사전(The Greatest Dictionary in Any Language)’이란 수사는 전혀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9일 한글날을 맞아 성대한 기념행사를 치르며 자축했다. 하지만 정녕 세종대왕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면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맞먹는 우리말사전쯤은 갖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