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철도개통100년…4형제 기관사의 뜨거운 열차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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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역장이셨던 선친의 뜻을 받들어 4형제가 철도에 몸담고 있습니다. 일가족이 근무한 햇수가 올해로 꼭 1백년이 됩니다. "

18일은 1899년 9월 18일 서울 노량진~인천 제물포간 33.2㎞의 경인철도가 개통된 지 꼭 1백년이 되는 날. 일가 2대 5부자의 근무 햇수가 1백년이 되는 철도 가족에게는 더욱 뜻깊은 날이기도 하다.

전일봉 (全一奉.43). 석봉 (錫奉.42). 규봉 (奎奉.38). 선봉 (善奉.36) 씨 형제가 그들이다.

이들 4형제는 순천기관차사무소 소속 기관사로 일하고 있으며, 전남 순천시 풍덕동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

4형제는 철도청에 몸담아 오다 84년 작고한 선친 전병오 (全炳五.전 전남 원창역장) 씨가 평소 강조한 '음지지만 봉사하는 일을 하라' 는 말에 따라 모두 철도인의 길을 걷게 됐다.

올해로 일봉씨는 18년, 둘째는 15년, 셋째는 19년, 막내는 12년을 근무하고 있다.

이들의 선친 병오씨는 36년 동안 근무하다 정년 퇴직했다.

일봉씨는 경찰관으로 근무하던 중 아버지의 뜻에 따라 82년 철도청에 입사, 현재 34만㎞ 무사고 운전을 자랑하고 있다.

석봉.규봉씨도 각각 30만, 48만㎞를 돌파한 베테랑 기관사다.

막내 선봉씨도 형들과 같은 기관사가 되기 위해 기관조사로 기관사 옆에 탑승, 열차 운전을 도와주며 20만㎞ 무사고 운전을 돌파했다.

4형제가 주파한 거리를 합치면 1백만㎞가 넘는다.

지구 둘레를 25바퀴 정도 달린 거리다.

일봉씨는 "경찰관으로 2년째 일하던 중 아버지가 '남에게 험한 일하는 것보다는 봉사하는 일을 하라' 며 철도청 취업을 권유, 철도인이 됐다" 고 말했다.

이들은 한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것이 때로는 부담스럽기도 하다고 한다.

동료들이 이름을 혼동해 부르는가 하면 한 사람만 잘못해도 형제가 모두 욕을 먹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순서대로 돌아가는 근무조를 편성하면서 첫째와 셋째의 이름이 바뀌는 바람에 뒤늦게 셋째가 형대신 근무하기 위해 뛰쳐나가기도 했다.

형제가 한 사무실에서 근무해도 서로 얼굴 보기가 힘든다고 한다.

한번 운행하면 왕복 10시간은 열차를 타야 하는 데다 근무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4형제는 설과 추석에만 자리를 같이 한다.

막내 선봉씨는 "5년 뒤 고속철도시대가 오면 고속 기관차를 운전하는 게 4형제 모두의 꿈" 이라며 "형들과 함께 1백만㎞ 이상 무사고 기관사가돼 기네스북에 오르고 싶다" 고 말했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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