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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사카키바라 前대장성 재무관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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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만난 사람 = 김정수 전문위원

-김정수 전문위원 : 요즘의 엔고 (高) 를 어떻게 보는가.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일본 대장성 재무관 : 공직에 있던 사람으로서 엔화 환율의 '수준' 에 대해 뭐라고 할 입장이 아니다. 그러나 '급격한 엔화 절상' 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김위원 : 왜 엔고인가?

"사카키바라 : 첫째 이유는 일본 경기가 예상 밖으로 강하게 회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2분기 성장률이 0.2%로 나왔는데, 시장의 기대는 - 0.5%였다. 두번째 요인은 그같은 경기회복세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상당한 규모의 추경예산은 대규모 국채 발행을 뜻하고, 이 경우 어느 정도의 이자율 상승이 예상되므로 엔화 가치를 부추기고 있다. 따라서 지금 일본 (중앙) 은행이 나서서 통화 정책을 완화시켜야 하는데도 아직까지 그런 조짐이 없다."

-김위원 : 당신과 일본은행 총재 사이에 이견이 있다던데.

"사카키바라 :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 간에 이견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민간인으로서의 나 개인과 일본은행 간에는 생각이 다르다. 나는 일본은행이 통화정책을 더욱 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소수지만 일본은행 통화정책위원회에도 나와 의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7월 열렸던 위원회에서 통화정책의 추가 완화에 관해 표결을 했을 때 아홉명 위원 중 적어도 2명은 나와 의견이 같았다.

-김위원 :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선진국들과 공동으로 외환 시장에 개입하는 것에 관해 희망을 버린 것 같다.

"사카키바라 : 희망을 버린 것은 아니다. 지금도 미국.유럽 등과 협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일본 대장성 관료가 선진7개국 (G7) 들의 협력 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지금 파리에 가 있다."

-김위원 : 미국이 내심 엔고를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 해소에 도움이 되니.

"사카키바라 : 그렇지 않다. 엔강세와 달러약세는 일본보다 미국에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달러 가치가 계속 떨어지면 미국에 투자해 놓은 외국인들의 자산 가치가 내려간다. 엄청난 해외 자금이 미국에 들어가 있는데 뉴욕 시장과 달러 가치가 신뢰를 잃으면 월스트리트부터가 심각한 위기를 맞는다. 이는 미국이 늘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미국 정부도 수차에 걸쳐 강한 달러가 미국의 국익에 맞는다고 했다. 급격한 엔화 절상을 피하려는 일본의 노력도 이러한 미국의 기조와 일치한다. 그러나 어떻게 선진국들이 효과적.성공적으로 외환 시장에 개입해야 하는지는 앞으로 더 협의를 해야 할 사항이다. 분명한 것은 미국과 일본 사이에는 더 이상의 엔화 절상이나 달러 하락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합의가 있다는 것이다."

-김위원 : 과거 공동 개입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G - 7이 이번에도 협력 방안을 마련하리라고 보는가.

"사카키바라 : 가능하다고 본다. 구체적인 방법은 시장 여건등에 좌우되겠지만 협력은 가능하다."

-김위원 : 각국이 저마다의 국제경쟁력을 생각하면 엔고가 좋지만 일본에 대한 수출을 생각하면 엔고 때문에 일본 경기가 식을까봐 걱정하는 양면성을 보이고 있다.

"사카키바라 : 중요한 것은 환율의 안정이다."

-김위원 : 환율의 수준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사카키바라 : 수준도 중요하지만 지금의 문제는 환율의 안정이다. 지난 한달여 동안 엔화 가치가 15%나 올랐다. 이것은 어느 시장참여자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김위원 : 일본 경기가 회복되면서 엔고가 되는 최근 상황을 두고 94~95년 당시의 일본 경제와 비교를 많이 한다. 그때처럼 모처럼 온 경기회복세가 엔고 때문에 주저앉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까.

"사카키바라 : 엔고 때문에 일본의 경기회복이 지연될 수 있다. 그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94~95년에 바로 그같은 경험을 했다. 당시 급격한 엔화 상승 때문에 경기회복이 1년 내지 1년반 지연되었다. 지금 상황이 그때와 똑같지는 않지만 유사성이 많다. 따라서 급격한 엔화상승을 막아야 하고 이는 미국의 이익과도 일치한다고 믿는다."

-김위원 : 엔고 문제를 제외한다면 일본의 최근 경기회복이 계속되리라고 보는가.

"사카키바라 : 급격한 엔고만 없다면 경기회복이 계속될 것이다. 2분기에 소비회복세가 확연해 졌다. 설비투자는 아직도 취약한 상태지만 기업 심리가 점차 개선되고 있으니 내년에는 상당히 활발한 설비투자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또 올 하반기에도 소비증가세가 지속된다면 내년도 경기는 활력이 붙을 것으로 본다."

-김위원 : 높은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소비세가 지속될 수 있을까.

"사카키바라 : 그렇다. 소득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 수년간 일본의 소비자들은 저축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근 한계소비성향 (소득증가에 따른 소비증가세) 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라. "

-김위원 : 일본 소비자들도 드디어 경기부양책의 효험을 믿기시작했다는 얘기인가.

"사카키바라 : 일본 경제가 이제는 회복될 때도 되었다. 그동안 심각했던 금융위기도 이제 최악의 상태에서는 벗어났다. 경기도 회복되고 있다. 일본의 기초 여건이 처음부터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었다. 경기회복과정에서 고용확대는 제일 나중에 나타난다. 먼저 정부의 지출이 있고, 소비와 민간투자가 따르고, 그 뒤에 고용확대가 나타난다. 실제로 최근 임시직 고용은 늘어나고 있다."

-김위원 : 일본 금융기관의 막대한 부실채권은 다 정리됐나.

"사카키바라 : 모든 부실채권이 다 정리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공적자금은 충분히 투입됐다. 최근에는 부실채권을 증권화해 시장에 유통시키고 있다. 지방은행은 아직도 뒤지지만 금융부분의 구조조정은 지금도 지행되거나 가속화되고 있다. 앞으로 1~2년동안 금융기관의 대형 합병 사례가 더 있을 것이다."

-김위원 : 아시아 지역의 경기도 실제로 회복되고 있는가.

"사카키바라 : 모든 지역에서 수요가 회복되고 있지 않은가. 경제 위기 초기에 국제통화기금 (IMF) 의 처방에 따라 긴축재정통화정책을 폈지만 이제는 재정지출확대와 저금리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재정확대와 저금리로 수요가 되살아났다. 물론 한국이나 태국등은 아직도 금융.기업 부문의 부채조정 (감축) 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하는 것은 경기가 회복될 때 구조조정이 더 쉽다는 점이다. 아시아의 경기회복은 시작되었고 그래서 아시아로 다시 자본이 돌아오고 있다."

-김위원 : 남아 있는 문제들이 경기회복세 유지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인가.

"사카키바라 : 한국 재벌의 재무구조개선 문제는 효과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잘못 처리됐을 때 재벌 문제는 '전염 효과' 가 크다. 이번 방한 기간 중 강봉균 (康奉均) 재경부장관 등 정부관료들을 만나보았는데, 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적절하게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제를 숙련된 솜씨로 처리한다면 한국은 드디어 경제위기의 터널을 벗어나 상당한 활력을 되찾게 될 것이다."

-김위원 : '숙련된 솜씨' 라니.

"사카키바라 : (웃으며) 결국 공적자금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적어도 어느 기간 동안은 대우 문제에 은행 보증이 필요하고 은행 보증은 재정으로 지원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은행은 부실 여신을 일부 대손처리해야 할 것이고 기업 채무에 대해 지급보증을 해 줘야 할 상황도 있게 된다. 나는 일본의 금융구조조정을 위해 상당한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한다고 초기부터 주장했던 사람이다. 여론은 반대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공적 자금의 투입이 금융부분의 안정을 가져 왔다."

-김위원 : 그런 지원이 은행.재벌들의 '도덕적 해이' 를 낳지 않겠는가.

"사카키바라 : 이런 일에는 언제나 도덕적 해이 문제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은행은 기업들, 특히 어려움에 빠진 기업들에게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 그 역할이다. 따라서 대우와 같은 큰 재벌이 어려움에 빠지면 은행들은 단기간이라도 금융지원을 해주어야한다. 나는 그런 것은 도덕적 해이로 보지 않는다. 그때의 지원은 특정개인이나 특정경영인에게 해 주는 것이 아니고 한국 경제의 핵을 구성하고 있는 전체 그룹을 상대로 하는 것이다. 경영인들이 부실경영을 했다면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그들이 회사를 떠남으로써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면 된다. 물론 재벌은 금융부문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전체 경제의 안정이 대우라는 특정 그룹의 회생에 달려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공적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위원 : 나 자신도 최근 "대우그룹의 외채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공적인 지불보증을 해 주어야 한다" 고 글을 썼다가 논란이 있었다.

"사카키바라 : (웃으며) 당신 입장을 지지한다. 대우 정도의 재벌이라면 '대마불사 (大馬不死)' 가 적용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재벌이 너무 커서 쓰러뜨릴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쓰러지는 경우 경제 전체에 미칠 파장 때문에 쓰러뜨릴 수 없다는 얘기다. 그들은 마치 은행처럼 이미 일종의 '공공재' 인 셈이다. 한국은 아직도 경제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고, 그 터널의 마지막 단계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비정통적인 수단을 동원해야 할 것이고, 그 비정통적인 수단은 국익의 시각에서 정당화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국익으로 정당화할 수 있다면 그 수단은 실행에 옮겨져야한다."

-김위원 : 아시아 경제를 위해 일본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사카키바라 : 일본은 '미야자와 계획' 등을 통해 상당한 규모의 금융재원을 아시아 국가들에게 제공했다. 그런 노력을 지속해야한다. 최근 일본이 활발히 논의하는 방안이 있다. 한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와 함께 '기업부채' 시장을 키워 활성화하자는 아이디어다. 아시아에 다양한 금융시장은 있지만 아직 성숙한 부채시장이 없다. 그러다 보니 순저축되는 아시아의 막대한 자금이 일단 미국이나 유럽으로 흘러나갔다가 그 돈이 달러나 유로화로 자금화되어 다시 아시아로 돌아온다. 아시아의 자금은 일단 아시아 역내에서 재활용 (recycle) 돼야 한다. 여기에 기업부채시장이 한 몫을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되어야 하고 또 역내 국가간 신용 및 결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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