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Y2K '면역장치' 개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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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나라는 '컴퓨터 2000년도 인식오류 (Y2K)' 문제에 얼마나 안전한 나라인가. 미국의 와튼계량경제연구소 (WEFA) 는 최근 한국을 이 문제에 대한 대비가 비교적 충실한 나라로 지목했다.

하지만 산업화.정보화가 상당히 진전돼 있어서 Y2K의 위험에 대한 노출 정도가 높으며 국제통화기금 (IMF) 위기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조그만 충격에도 경제적.사회적 혼란이 조성될 수 있으므로 보다 완벽한 대비책이 강구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는 'Y2K' 에 대한 기술적 치유가 주된 관심사였지만 최근에는 거시경제 혼란의 최소화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Y2K 문제는 기술적으로 완전히 치유되기도 어렵고 또 치유를 확신하려면 상당한 기간이 지나야 하기 때문에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극단적으로는 70년대 석유위기에 버금갈 정도의 경제적 충격이 Y2K로 인해 빚어질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Y2K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정책적 접근을 필요로 하고 있다.

세계 경제가 서로 얽혀 하나의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는 네트워크 경제시대에는 비록 '예고' 된 아주 조그만 충격이라 하더라도 이해 당사자들의 작용과 반작용의 상승작용을 통해 예기치 못한 커다란 변화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Y2K는 단순한 정보시스템 차원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전체의 문제로 인식돼야 한다.

예컨대 심리적 불안감을 느낀 경제 주체들이 물건을 사재기하거나 현금보유를 늘리기 시작하면 국내물가나 금리가 상승하게 되며, 국제 투자기관들이 Y2K문제 해결이 부진한 나라를 회피하려 할 때는 국제금융 흐름까지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Y2K에 대한 바람직한 접근 방법은 경제시스템의 체질, 즉 면역능력을 제고시키는 것이다.

미국정부가 지난 7월 제정한 "Y2K문제법 (Y2K Act)" 에 의하면, Y2K문제로 인해 소송이 제기될 경우, 관련 기업에는 문제해결을 위해 90일간의 유예기간이 주어진다.

이렇게 되면 기업이 직면할 수 있는 소송사태를 어느 정도 제한할 수 있고 또 그 기업은 자신이 초래한 원인만 책임을 지게 된다.

또한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은행시스템의 오작동을 우려한 예금자들이 돈을 마구 인출해 나갈 경우에 대비할 수 있도록 금융기관들에 금리만 약간 높인 전용펀드를 허용해 주었다.

기술적으로 완전한 대비를 갖춰가고 있는 미국이지만 예상치 않은 어떤 충격에도 경제주체들의 혼란을 극소화할 수 있는 장치들까지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고 (高) 위험 고 (高) 대비국' 으로 분류된 한국은 무엇보다 남은 3개월 동안 Y2K의 기술적 치유와 함께 Y2K의 충격을 완화하고 파급효과를 차단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데 진력해야 한다.

둘째,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 전체의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하다.

누구든지 Y2K문제를 공공기관이나 기업 등 개별 차원의 문제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는 인터넷이나 각종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연결돼 있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다.

각종 컴퓨터 이용자들은 자신뿐 아니라 자신과 연결된 시스템 전체의 문제 해결능력을 미리 점검해야 한다.

특히 자금과 전문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대내외적인 홍보강화를 통해 불안감 해소에 적극 나서야 한다.

Y2K문제에 대한 국내의 기술적 대비태세를 대내외적으로 적극 홍보하고, 설혹 기술적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법적.제도적 충격 완화장치를 통해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최대한 차단할 수 있음을 주지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Y2K 문제와 관련해 국민이나 외국인들이 필요 이상으로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게 될 것이다.

Y2K문제는 단순히 컴퓨터 오작동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20세기 산업사회에서 21세기 네트워크 사회로의 문명사적 이행을 위한 상징적인 통과의례다.

하나의 작은 사건이 천파만파 (千波萬波) 를 불러올 수 있는 '파동사회' 에서는 경제나 사회문제를 이전처럼 단순처방으로 해결하려 든다면 오히려 전체적인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Y2K문제의 참된 교훈은 21세기에 들어서 우리의 사회.경제 시스템이 보다 정교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보완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을 깨우쳐 주는데 있다.

정순원 현대경제연구원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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