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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지도가 바뀐다] 29. 간송과 간송미술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간송미술관 (관장 전영우) 은 일제 시대 사재를 털어 문화재의 해외반출을 막았던 선각자 간송 (澗松) 전형필 (全鎣弼.1906~62) 의 뜻을 기리는 곳이다.

38년 간송이 수집한 미술품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보화각이 그 전신으로, 지난해 '환갑' 을 맞은 우리나라 사립박물관 제1호다.

스물 다섯 젊은 나이로 대지주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았던 간송은 서화의 대가 위창 (葦滄) 오세창 (吳世昌) 과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화가 춘곡 (春谷) 고희동 (高羲東) 의 영향을 받아 우리 문화재 지키기에 나서게 된다.

당시는 일제가 자행한 우리 문화유산의 약탈로 인해 고려청자나 신라불상.조선시대 서적 등의 상당수가 일본으로 건너간 상태였다.

그는 일본의 문화말살정책에 맞설 길은 오직 문화재 수호밖에 없다는 일념으로 전국 각지에 사람을 풀어 골동품이 그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간송미술관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버금가는 최고 컬렉션을 갖추게 됐다.

자타가 공인하는 겸재 정선의 금강산 진경산수화를 비롯, 추사 김정희.단원 김홍도의 서화 등 국보와 보물 22점을 포함한 주옥같은 소장품이 그것이다.

'간송 컬렉션' 이 되기까지 비화도 많다.

겸재의 '해악전신첩 (海嶽傳神帖)' 은 친일파 송병준의 손자 집 아궁이에서 불쏘시개가 될 뻔한 것을 구해낸 것이다.

또 청자기린형향로 (국보65호) 와 청자압형연적 (국보74호) 등 최고급 고려청자 다수는 37년 한 영국 변호사에게서 일괄 인수한 것으로 간송은 이를 위해 5천석지기 전답을 팔았다.

66년 장남 성우, 4남 영우씨와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등 지인들이 뜻을 모아 이 자리에 한국민족미술연구소를 설립했다.

71년 겸재전을 시작으로 매년 봄.가을 두번 열리는 정기전은 문화애호가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나들이 코스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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