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정상회담] '베를린 낭보' 기대 北압박 자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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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오부치 게이조 (小淵惠三) 일본 총리는 북한 미사일 문제에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회담 뒤 3국 정상이 내놓은 공동 언론 발표문에는 '북한 미사일' 이란 표현은 없다.

그저 "북한이 한.미.일의 우려를 해소할 것" 을 촉구하는 수준이었다.

대북 포괄적 협상 내용을 담을 페리보고서를 뒷받침 하는 정도였다.

이와 관련, 우리측 관계자는 "미사일 문제에 대한 3국 정상들의 고심과 절제가 깔려 있다" 고 분석했다.

특히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했을 때의 경고도 없다.

반대로 발사를 유보할 경우 "북한과의 관계 개선 준비가 돼 있다" 는 우회적인 유화적 메시지만 있다.

북한 미사일에 관련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사전 예고와는 판이하다.

일단 표면적 이유는 "베를린 북.미 미사일 회담이 안 끝났기 때문" 이라는 게 회담 현장에서의 설명이다.

때문에 베를린 회담 결과를 놓고 3국의 입장을 세밀히 조율하려던 계획에 차질을 빚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회담의 절제 분위기가 설명되지 않는다.

문제는 베를린 회담의 진척상황이다.

이에 대해 클린턴 대통령은 金대통령과 오부치 총리에게 "베를린 회담이 진전되고 있음을 알려드린다" 고 소개했다.

회담 뒤 홍순영 (洪淳瑛) 외교통상부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예단할 수는 없지만 북한이 우리의 입장을 받아들일 것으로 예측한다" 고 말했다.

특히 洪장관은 베를린 회담의 연장 문제를 놓고 "북한이 처한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보아 큰 틀로는 회담 성사를 낙관할 수 있다고 본다" 고 말했다.

洪장관의 말을 확대하면 미국과 북한이 미사일 발사 유보의 원칙에는 의견접근을 봤다고 할 수 있다.

특히 洪장관은 "오늘 (12일) 속개되는 베를린 회담에선 북한 미사일 문제와 이에 따른 인센티브 문제가 물려 협상이 진행될 것" 이라고 예고했다.

이같은 베를린 회담의 희망적 진전 상황들이 오클랜드 3국 정상 회담을 절제된 분위기로 이끈 배경으로 현지에선 받아들이고 있다.

이 관계자는 "미사일 발사 저지 담판이 최종단계에 들어간 만큼 북한을 자극하거나, 앞서갈 필요가 없다는 게 3국의 공동 판단" 이라고 파악했다.

특히 미사일에 관한 북한의 입장.정보를 현재 미국이 상당부분 독점하고 있어 한국과 일본은 일단 베를린 회담을 지원하는 쪽에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 그런 탓인지 북한이 베를린 회담을 깰 경우에 대비한 공동 대처방안은 별로 드러나 있지 않다.

다만 金대통령은 "미사일을 발사해도 대북 포용정책은 유지할 것" 이라고 했고, 오부치 총리는 "미사일 포기 때 북한이 받을 혜택과, 발사 때의 불이익을 분명히 해야 한다" 는 입장만 제시돼 있다.

오클랜드 = 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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