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심술, 21년 만에 한반도 비켜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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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올 들어 한반도에 피해를 끼친 태풍이 ‘0’을 기록할 전망이다. 피해 없는 태풍은 1988년 이후 21년 만이다.

일본에 큰 피해를 준 18호 태풍 ‘멜로르’가 온대저기압으로 변질되면서 9일 오후 3시에 소멸되면서 한반도에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 소방방재청 복구지원과 박종호 담당은 “통계상으로 10월 이후에는 태풍 영향이 점점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며 “해수면 기온이 내려가기 때문에 올해 태풍 피해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국가태풍센터에 따르면 30년(1971~2000년)간 연평균 26.7개의 태풍이 발생했고 그중 3.4개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센터 김태룡 센터장은 “과거 자료를 분석해보면 태풍 피해가 없었던 것으로 기록된 해는 1920, 47, 88년이었고 올해가 네 번째”라고 말했다.

올 들어 5월부터 매달 2~6개, 모두 19개의 태풍이 발생했으나 한반도에 피해를 준 것은 없다. 8월에 발생한 8호 태풍 모라꼿은 대만에 천문학적인 피해를 야기했으나 한반도에는 다소 많은 비를 뿌렸을 뿐 별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22개의 태풍이 발생했으나 7호 태풍 ‘갈매기’만 중부지방에 강한 바람을 몰고 와 피해를 줬다. 2007년에는 세 개(마니·우사기·나리)가 피해를 줬다.

올해 태풍이 한반도에 힘을 못 쓴 이유는 차가운 대륙성 고기압이 확장하면서 태풍의 북상을 막았기 때문이다. 태풍 ‘멜로르’ 또한 대륙성 고기압과 제트기류를 타고 온 한기 때문에 일본으로 선회하면서 온대저기압으로 바뀌며 소멸됐다.

하지만 연말까지 두고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91~2000년 11월에 평균 2.5개, 12월에 1.3개의 태풍이 발생했다. 다만 그 시기에 발생한 태풍이 한반도에 피해를 준 적은 없다. 주로 7~9월 태풍이 한반도에 피해를 몰고 왔다.

국가 태풍센터 강성대 예보관은 “아직 태풍 시기가 완전히 끝난 게 아니므로 올해 태풍의 영향이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단정짓기엔 이르다”고 말했다.

학계에선 국내 태풍 영향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시각도 있으나 태풍센터 차은정 박사는 “98년 이후 태풍 피해가 적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추세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태풍의 영향이 없다고 해서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김태룡 센터장은 “태풍은 호우를 동반하고, 이는 곧 수자원이 된다”며 “태풍이 없으면 다음해 가뭄이 올 수도 있어 ‘효자태풍’이 필요할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태풍이 지나가면서 해수면에 강한 파도를 일으키면 연안 생태계가 건강해지는 효과가 있다.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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