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깊이읽기] 몸 바쳐 연구한 과학, 몸 던져 오용을 막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존 벡위드 교수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할 때부터 그것의 오용을 우려했다. [그린비 제공]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존 벡위드 지음, 이영희 외 옮김
그린비, 304쪽, 1만5900원

그는 완전히 다른 두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다. 그리고 그 둘을 하나로 퓨전해 새로운 분야를 하나 만들었다. 미국 하버드 의대의 분자생물학자 존 벡위드 말이다.

벡위드는 1931년생으로 하버드대에서 생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65년부터 이 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69년 박테리아 염색체에서 유전자를 최초로 분리해 유전학 연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과학자의 한 사람이다. 2005년 미국 미생물학회로부터 평생공로상을 수상하는 등, 노벨상만 받지 못했을 뿐 과학자로서 최고 명성을 누리고 있다. 여기까지가 그의 한 단면이다.

또 다른 한 쪽은 사뭇 다른 세계다. 그는 과학의 사회적 영향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자신이 몸바친 유전자 연구가 질병 치료에만 쓰이지 않고 개인에 대한 통제와 차별의 수단으로 쓰일 가능성을 염려해 왔다. 심지어 자신의 연구 업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오용의 가능성을 염려했다. 그래서 과학으로 인한 개인의 피해를 줄이는 운동에 몸을 바쳐왔다.

이 책은 무난한 우등생이던 자신이 어떻게 사회문제에 눈을 뜨게 됐고, 연구와 사회활동이라는 서로 다른 두 세계를 병립해왔는지를 다룬 자서전이다. 아울러 60년대 반전 운동을 비롯한 사회문제에 파고들던 자신이 어떻게 과학윤리와 사회적 책임감이라는 영역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게 됐는지도 설명하고 있다.

그는 하버드 의대 교수로 임용된 뒤 반전운동에 깊숙이 관여했다. 68년 마르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된 뒤로는 흑인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 하버드 의대 신입생 중 흑인이 격년으로 한 명꼴로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고는 대학 당국을 설득해 매년 15명의 흑인에게 입학허가를 주도록 했다. 그러다 69년 이후에는 연구와 사회활동의 두 영역을 하나로 합치려고 노력했다. 과학의 사회적 의미와 과학자의 윤리와 책임이라는 분야를 파고들었다. 그 결과가 83년 하버드대의 ‘생물학의 사회적 이슈’ 강좌 개설이다. 과학자의 고민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게 된 것이다.

그의 또 다른 특징은 추상적인 이념이나 논쟁보다 ‘과학의 오용’을 막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활동에 주력했다는 점이다. 유전적인 배경을 이유로 특정 인종이나 개인을 차별할 수 있는 각종 우생학적인 프로젝트를 고발, 비판하는 일에 앞장선 것이 대표적이다.

과학이 진리를 찾아가는 길이라면 그 연구 결과도 윤리적으로, 인간적으로 이용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그의 주장이 가슴에 와 닿는다.

채인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