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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그랜드 바긴’이 가능한 세 가지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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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정부의 북핵 문제 해법인 그랜드 바긴에 대한 일부의 비판적 견해는 잘못된 고정관념에 기인하는 것 같다. 북한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대북제재는 효과가 없다, 중국이 북핵을 용인할 것이다 등이 그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핵 해결의 길은 없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오류일 가능성이 높다.

‘그랜드 바긴’은 새로운 현실 인식에 기초한 새로운 북핵 해법이다. 그랜드 바긴은 북핵 폐기가 가능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북한이 정말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한다면 협상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가야 한다. 북한이 쉽게 핵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국제사회가 공조해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도록 할 수 있다고 본다. 북핵 문제에 관한 비관주의·패배주의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그랜드 바긴은 핵문제가 국제적 문제이기는 하지만 남북문제라는 인식에 기초해 있다. 북한은 핵문제가 “조·미 사이의 문제”라고 주장하는데, 우리는 그동안 북한의 한국 따돌리기 전략에 휘둘렸고, 남북대화와 남북관계 개선에만 매달리는 우를 범하였다. 지난 1년 반 동안 북한이 요구대로 해주지 않으면 ‘잿더미’를 만들겠다고 우리를 협박했는데, 이는 남한에 대해 핵을 사용하겠다는 뜻이다. 이것이 어찌 우리 문제가 아닌가. 대북정책에서 핵문제를 우선 현안으로 고려하자는 것이다.

또 그랜드 바긴은 핵이 남북 문제이기도 하지만 국제적 문제이기 때문에 관련 국가 간에 국제공조를 철저히 해야 하지만 본질적으로 북핵 해법을 둘러싸고 각국의 접근법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기초해 있다. 우리 방안을 가져야 우리의 협상력이 높아진다.

그랜드 바긴이 실현 가능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북한이 원하는 방안일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이미 그랜드 바긴에 대해 거부의사를 밝혔지만, 실제로 거부하기는 어렵다.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연다고 하였는데 단계적 접근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므로 일괄타결을 원할 수도 있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천문학적이다. 미국 및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통한 국제고립 해소, 국제금융기구로부터의 개발차관 도입, 일본으로부터의 100억 달러에 달하는 식민지 배상금, 관련국으로부터의 에너지 및 경제 지원 등이다.

둘째, 북핵에 대한 중국의 적극 반대다. 유엔안보리 제재 결의 이후 북한이 미국과 한국에 유화 제스처로 태도를 바꾼 배경에는 중국의 대북정책이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중국 원자바오 총리가 방북해 경제지원을 약속했지만 이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희구하는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6자회담에 나오게 하기 위한 회유와 압박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북핵 용인은 아니다.

셋째, 대북제재가 효과가 없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BDA) 금융제재가 북한에 가한 타격은 매우 컸으며, 북한이 최근 유화 제스처로 태도를 바꾼 것도 유엔안보리 제재의 파괴적 효과를 우려해서이다. 변방적 사고에서 벗어난 중심적 사고로,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핵을 포기하도록 북한을 설득하는 현재의 원칙 있는 정책을 견지한다면 핵문제 해결은 가능하다.

서재진 통일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