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기 왕위전] 이창호-유창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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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묵향 그윽한 대국장엔 어느새 戰雲

제1보 (1~16) = "진도 (珍島)에 와서 글씨자랑 그림자랑 노래자랑 하지마라. " 예부터 내려오는 얘기라며 진도군수 박승만씨가 이창호9단 등 일행에게 전해준다.

아름다운 한려수도가 시작되는 곳. 금기서화 (琴棋書畵) 중 금서화에 두루 빼어난 진도에서 세계 최강자들이 한판의 바둑을 두니 이로써 네가지가 모두 갖춰졌다.

8월 13일, 대국장으로 정해진 향토문화회관에 도착하니 그 위용이 대단하다. 진도는 인구 4만여명에 불과하지만 씻김굿 등 무형문화재가 많은데다 서화의 거목이라 할 소치 (小癡) 선생 가문이 3대를 살았던 탓인지 어디를 가나 묵향이 그득하다.

대국장도 서화와 병풍으로 둘러싸여 운치가 그만이었다. 입회인 김인9단이 지금까지 본 대국장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 같다고 하자 관장 양재환씨의 얼굴이 자랑스럽게 벌어진다.

10시 정각에 대국 개시. 李왕위의 출발은 흑1, 3, 5 중국식. 이에 대응하는 劉9단의 백6이 상큼하다. 인터넷 중계를 맡은 양재호9단은 '가' 로 다가서면 '나' 로 협공당하는 게 싫어 느긋하게 둔 것 같다고 한다.

한국기원은 이 대국부터 인터넷중계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그곳 대화방에 들어가 보니 이창호 팬과 유창혁 팬들이 사뭇 격론을 벌이며 요지경을 연출하고 있다.

'유교주에게 충성을' 이란 ID마저 등장한다. 흑7에 백8은 절대의 한수. 흑9에서 李왕위는 무려 23분을 장고했다.

백10에서도 劉9단의 독특한 체취가 묻어난다. 이런 수들은 선악을 논할 수 없다. 눈목자 행마는 어느덧 유창혁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12에서 15까지는 매수 느리게 진행되었다.

백은 어떻든 좌하쪽만은 실리를 지키고 싶고 흑은 이곳을 가볍게 처리하고 상변으로 달려가고 싶다. 낮게 파고든 16은 별미의 한수.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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