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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 색깔로 경쟁할때가 됐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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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 정치는 헷갈리지 않는다.

무슨 문제가 대두되면 공화당은 어떤 반응을 할 것이고 민주당은 무슨 입장을 취할 것인지를 누구나 짐작한다.

덴버의 컬럼바인 학교에서 총기사고가 났으면 민주당은 정부가 총기규제를 엄격히 해야 한다고 나서고, 공화당은 총기소유는 개인의 자유이므로 그보다 애들을 도덕적으로 잘 교육시키는 것이 급하다고 맞선다.

경제문제도 마찬가지다.

8천억달러의 재정흑자를 놓고 공화당은 정부가 세금을 많이 거둬 돈이 남았으니 납세자인 개인들에게 그만큼 세금을 감면하자고 나선다.

반면 민주당은 그 돈으로 교육.환경 등에 투자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정당간 개인의 자유와 정부의 역할에 대한 입장이 처음부터 다르기 때문에 정책도 다를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한다는 나라는 모두 이런 식으로 정당간 구별이 뚜렷하다.

영국의 보수.노동당, 독일의 기민.사민당으로, 다당제를 택하는 프랑스나 이탈리아도 좌.우.중도로 나뉜다.

각 정당은 자신의 좌표와 부합하는 정책을 선택하니 유권자도 입맛에 맞는 정당을 택하면 된다.

요즘 와서는 이 구분이 흐려지고 있기는 하다.

특정이념이나 계층만을 대변할 경우 계급정당.이념정당이라는 딱지가 붙어 광범한 지지를 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당은 모든 계층을 대변하는 정당 (Catch - All Party) 이라고 내세운다.

그렇다고 한 정당이 좌에서 우까지 모두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상대적인 관점에서 좌와 우는 계속 존재하며 그것이 차별성의 바탕이 된다.

자유와 평등은 바람직한 가치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이 양립되기는 힘들다.

자유를 추구하면 평등이 희생되고 평등을 지나치게 추구하게 되면 자유는 박탈당할 수밖에 없다.

똑같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신봉하면서도 자유에 더 비중을 두면 우파정당, 평등과 사회정의에 더 가치를 두면 좌파정당이다.

자유와 평등뿐이 아니다.

이상과 현실, 이성과 도덕, 과학과 종교, 변화와 전통, 사회정의와 효율성, 노조와 기업 등 모든 면에서 의견은 양분되는 경향이 있으며 각 정당은 자신의 이념을 기준으로 해 어느 한쪽에 비중을 둬 이를 대변한다.

미 공화당은 자유경쟁을 통해 효율성이 높아져야만 잘 살 수 있게 된다고 믿고 있고, 민주당은 그렇게 되면 개인간 격차가 심하게 나니 정부가 개입해 어느 정도 사회정의를 세우자는 것이다.

보수주의를 지향하는 공화당은 사회정의에 약하며, 미국식 사회정의를 지향하는 민주당은 효율성에서 약점이 있다.

다음 대통령 선거도 양당이 이러한 약점을 어떻게 보완하느냐에 달렸다.

공화당의 부시 후보는 '인정많은 보수주의 (compassionate conservatism)' 를, 민주당의 고어 후보는 '현실성있는 이상주의 (practical idealism)' 를 구호로 내걸고 있다.

자기의 색깔은 간직하면서 그 안에서 보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국민회의가 신당을 만든다면서 '개혁적인 보수세력' 과 '건전한 혁신세력' 을 모은다고 한다.

혼자서 좌.우파를 모두 하겠다는 말이다.

한나라당 역시 마찬가지다.

좌에서 우까지 도저히 같은 당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정책이라는 것도 충돌 여부를 따지지 않고 좌에서 우까지 한 당에서 모두 한다고 나선다.

어느 때는 사회주의식 좌파가 됐다가 어느 때는 왕정보다 더한 우파가 된다.

같은 당이 이렇게 왔다갔다 하니 국민들은 종잡을 수가 없다.

이런 면에서는 여야에 차이가 없다.

그러니 유일한 구별은 호남당이냐 영남당이냐, 양金씨 당이냐 아니냐가 고작이다.

우리는 색깔논쟁을 피해 왔다.

진보라 하면 공산주의부터 생각하고, 보수라 하면 유신.5공 잔당만 상기하니 둘 다를 기피해 왔다.

좌파라고 해 분홍빛으로 봐서도 안되고 우파라고 해 독재의 하수인으로 봐서도 안된다.

그 정도는 이제 극복해야 한다.

미국의 공화.민주당이나 영국의 보수.노동당처럼 자연스런 구별이 필요할 때가 됐다.

여권이 여러 개혁을 주도하면서 평등성향의 이념성을 어느 정도 드러내는 것 같았으나 곧 이를 희석시키는 입장을 발표했다.

야당도 우파적 주장을 펴는 듯했다가 유야무야로 끝냈다.

표 계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러한 혼돈 속에서 지낼 것인가.

이것이 정리되지 않는 한 한국 정치는 계속 지역당.개인당의 한계를 넘을 수 없다.

정치개혁은 우리 정당들이 자기 색깔을 갖는 것으로 시작돼야 한다.

문창극 美洲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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