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주가조작 사건] 정회장 일가도 손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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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현대증권의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에 대한 소환이 초읽기에 들어가는 등 수사가 급류를 타면서 사법처리의 폭과 수위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특히 현대증권이 현대전자 주식을 끌어올려 1천억원을 챙긴 사실과 함께 강원은행 등 다른 현대 계열사들의 주가조작 혐의가 드러나 칼날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상황이다.

현재까진 현대증권 이익치 (李益治) 회장의 주도로 현대상선.현대중공업.현대증권 자금 2천2백억원을 동원, 현대전자의 주가를 끌어올렸다는 게 검찰이 그리는 사건 구도.

검찰 관계자는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을 지목한 금감원 고발 내용과는 달리 사건 중심이 현대증권으로 움직였다" 고 말했다.

현대증권이 사건의 주도세력이란 얘기다.

이에 따라 검찰은 李회장과 지시를 받고 움직인 현대증권 임직원들에게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금을 빌려준 현대중공업 김형벽 (金炯璧) 회장과 현대상선 박세용 (朴世勇) 회장 등 양사 최고 경영진의 경우 李회장과 '공모' 유무에 따라 사법처리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초미의 관심사는 현대그룹 차원 및 鄭씨 일가의 개입 여부. '작전' 이 펼쳐진 지난해 5월부터 11월 사이 鄭씨 일가는 현대전자 주식 89만주를 매각, 45억여원의 이득을 봤다.

아울러 당시 퇴출위기에 몰린 현대전자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LG전자와 빅딜을 의식, 장부상 '몸집불리기' 를 위해 주가조작이 감행됐을 것이란 추측도 있어 '윗선' 의 존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검찰이 李회장을 소환 조사, "지시를 받고 움직였다" 는 자백을 끌어낼 경우 鄭씨 일가로 수사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제위해 (危害) 론' 을 앞세워 李회장에 대한 처벌수위를 낮추길 원하는 기류가 여권 내에서 감지돼 수사팀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검찰은 3일 "지난해 3월 현대증권이 2천5백억원어치의 현대전자 전환사채를 산 뒤 주가조작이 끝난 같은해 12월 3천5백억원에 팔아 1천억원을 챙겼다" 고 발표했다.

"주가조작이 사실이라도 사실상의 이득은 거의 없다" 는 현대측 논리를 반박하는 동시에 李회장에 대한 강도 높은 사법처리가 불가피하다는 이유를 천명한 셈이다.

결국 선처를 요구하는 일부 의견에도 불구하고 수사팀은 李회장 등 핵심 관계자들에 대한 강경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검찰은 강원은행 등 다른 계열사의 주가조작에 대해선 "규모가 극히 미미하다" 고 밝히고 있어 처벌이 이뤄지더라도 그 강도는 낮을 전망이다.

남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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