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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살아있다] 13. 경동약령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서울경동약령시협회 신항숙 (申恒淑.51.서울시약사회 한약위원장) 부회장이 지난 1일 요즘들어 주부들의 발길이 잦은 동대문구 제기동 '경동약령시 (京東藥令市)' 를 둘러봤다.

申부회장은 조선대 약학과를 나와 특이하게 30년 가까이 한약업계에만 몸담아 온 인물. 가을로 접어들자 약령시에는 유난히 무더웠던 올 여름 날씨에 지친 가족의 건강을 염려해 보약을 지으려는 주부들로 붐볐다.

"찬 것을 많이 먹어 헛배가 부르면 민간요법으로 저기 걸려 있는 개구리 말린 것 10개를 사다가 삶은 물을 마시게 해 치료하기도 합니다. " 그녀는 약령시에 들어서자마자 시중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희귀한 약재 (藥材) 들을 가리키며 자세히 안내해 준다.

선인장 열매.맨드라미 꽃씨 (계관화).옥수수 수염.수세미.뽕나무 뿌리.인진 쑥.참 빗살나무 등. 이곳은 민간요법으로 쓰이는 각종 약재를 값싸게 구할 수 있는 보기 드문 특수시장이다.

그녀는 "대한약전에 적혀 있는 5백여종의 한약재를 거의 모두 갖춘 국내 유일의 시장" 이라고 설명했다.

제기동과 용두동 일대의 총 7만1천평에 한의원 (2백70개) , 한약국 (2백60개) , 한약방 (28개) , 한약재 수출입업체 (83개) , 한약도매업 (79개) , 한약 관련 상회 (1백4개) 등 모두 8백여개의 한약 관련 점포가 밀집돼 있는 약령시는 국내 최대의 한의약 종합단지다.

전국의 한약재 유통물량 가운데 70%를 이곳에서 담당하고 있다는 게 상인들의 주장이다.

잠시 후 그녀의 발길이 닿은 곳은 시장 한켠에 서 있는 '보제원 (普濟院)' 기념비 터. 세종실록 등에 따르면 이곳은 조선조 때 (1392~1895년) 왕명에 따라 여행자에게 무료로 숙박을 제공하고 병자 (病者)에게 약을 투여해 주던 곳으로 기록돼 있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자리에 지난 60년대말부터 한약재를 취급하는 업소들이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강원도.경기도.경상도.충청도 등지에서 생산.채취된 한약재가 이곳으로 모이는데는 인근의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과 청량리역의 편리한 교통도 한몫 했다.

이후 동대문구 한의사회. 약사회. 한약협회. 한국한약도매협회. 한국생약협회 등 7개 단체가 '한약가협의회' 를 구성하고 95년 서울시로부터 경동약령시 (전통한약시장지역) 로 지정받았다.

申부회장은 중앙통거리인 '약전 거리' 로 발길을 옮겼다. 그녀는 점포에 진열돼 있는 미삼 (尾蔘) 으로 만든 인삼 술 (3단 세트.7만원) 을 관심있게 쳐다봤다.

"최근 이곳에서 가짜 산삼 (山蔘) 거래가 부쩍 늘어 걱정됩니다. " 그녀는 이 곳에서 산삼이라고 거래되는 대부분의 물건이 장뇌 (인삼을 산에서 키운 것) 이거나 중국산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녀는 한약재를 종이 봉지 대신 비닐로 규격 포장해 거래되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일괄적으로 비닐 포장하는 바람에 한약재에 곰팡이나 벌레가 생기고 약효가 변하는 등 문제점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이를 지키지 않으면 당국의 처벌을 받아 벌금을 내는 등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申부회장은 약령시에 대해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이곳에 약초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한의약 전시관과 문화회관이 건립돼 국제적인 관광명소로 발전될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장이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의술인 한의약이 계승되는 터전이 될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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