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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세근 특파원 동티모르 르포 5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딜리 (동티모르) =진세근 특파원] 동티모르 주민들이 민병대의 폭력을 피해 탈출 러시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인도네시아 정부는 2일 이 지역의 치안유지를 위해 군을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알리 알라타스 인도네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잠시드 마커 유엔 동티모르 특사와의 회담에서 "군이 동티모르의 질서 회복을 위해 투입될 것" 이라고 말했다.

알라타스 장관은 "위란토 군총사령관이 이미 이안 마틴 유엔 동티모르 파견단 (UNAMET) 단장에게 군이 딜리의 모든 UNAMET 건물과 소속 요원, 외국인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경찰과 협력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고 전했다.

인도네시아 당국의 이같은 조치는 지난 1일 밤 민병대들이 UNAMET 건물 부근의 집을 불태우고, 독립파인 동티모르민족저항평의회 (CNRT) 건물을 급습한 데 따른 것이다.

민병대원들은 밤늦게까지 시내 곳곳을 배회하면서 공포탄을 쏘고, 경적을 울려댔다.

주민들의 '딜리 탈출' 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2일 새벽에는 약삭빠른 장사꾼이 마련한 딜리 탈출용 선박에 주민들과 외신기자들이 몰려들어 2시간 만에 3백석이 매진됐다.

2일 오전 딜리시 중심가엔 2개의 상점만 문을 열었다.

'두타 모드' 라는 상점의 점원 수바기오군은 "쌀.달걀.통조림.물.휴지.의약품 등을 한묶음씩 사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고 전했다.

안타라 통신은 주민 투표 이후 매일 최소한 2백명이 인도네시아 영토인 서티모르의 벨루로 탈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물라디 법무장관은 "개표 결과 독립파가 승리한다면 탈출하는 주민이 20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되며 정부는 이에 대비해 비상계획을 준비 중" 이라고 밝혔다.

투표 전후 비교적 잠잠했던 민병대가 갑자기 대대적인 공세로 나온 것은 계산된 단계적 전략으로 보인다.

CNRT 기습은 상대방의 반격을 유도해 내전상태를 조장함으로써 개표를 방해하고, 결국 개표결과를 부정하기 위한 수순으로 읽혀진다.

재투표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전면전이 불가피하다는 말도 서슴없이 해댄다.

외국기자라고 민병대의 공격에 안전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특히 호주기자들을 집중적으로 노리고 있다.

자신들을 '악마' 로, 독립파들을 '천사' 로 묘사하고 있다는 불만 때문이다.

지난 1일에는 민병대원 서너명이 마코타 호텔에 들이닥쳐 호주기자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이에 따라 마코타 호텔에 본부를 차리고 위성서비스를 제공하던 로이터와 AP가 5일 전세비행기편으로 딜리를 떠나기로 하는 등 외신기자들도 탈출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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