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거의 못보는 美육상선수 세계대회 1,500m 준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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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출발 총성이 울리자 그녀는 희뿌연 세상 속으로 달려나갔다' . 워싱턴 포스트는 27일자에서 스페인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약시 (弱視) 의 미국 육상선수 말라 러년 (30) 을 이렇게 묘사했다.

8세때 시작된 망막이상으로 3m 이상은 보지 못하는 러년은 26일 1천5백m 예선을 당당히 통과, 준결승에 진출하게 됐다.

"그냥 느낌과 본능으로 달려요. " 천부적인 운동신경으로 어릴 때부터 체조와 축구를 좋아한 그녀는 갑자기 '퇴행성 시력이상' 이라는 병에 걸려 축구공조차 보이지 않게 되자 이들 종목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워낙 운동을 좋아한 그녀는 어렴풋한 윤곽만으로도 육상은 가능하다고 판단, 도전을 시작했다.

처음 선택한 종목은 여성 7종경기 헵타슬론. 장애물경주를 위해선 허들마다 몇 발을 내디뎌야 하는가를 미리 계산했다.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지난 96년 헵타슬론 8백m 종목에서 그녀는 미국 최고신기록을 경신했다.

그동안 가족들도 말못할 어려움을 겪었다.

책을 눈 가까이 갖다 대고 보느라 항상 어깨통증을 호소하는 딸을 보고서 엄마는 책을 확대복사했다.

의사가 그녀의 병은 뇌 이상과 관련이 있으며 영원히 보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을 때는 가족이 함께 울었다.

"저에게 중요한 것은 닥친 어려움을 이겨내려는 저의 의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러년은 자신의 신체결함이 오히려 기록경신의 계기가 되고 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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