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알면 더 재밌다] 38. 한국 태권도 싹쓸이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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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올림픽에서 한국은 25일까지 6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27일 시작되는 태권도에서 한국은 3개의 금메달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남자부 문대성(80㎏급).송명섭(68㎏급)과 여자부 황경선(67㎏급).장지원(57㎏급) 등 4명의 출전선수 중에서 한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어야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올림픽 태권도 체급은 남녀 4개씩 모두 8개 체급인데 왜 한국은 4개 체급에만 선수를 출전시킨 것일까. '태권도 종주국'으로서 선수를 많이 출전시키면, 더 많은 금메달을 딸 수 있을 텐데-.

그러나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세계태권도연맹(WTF)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을 앞두고 원칙을 정했다. '한 나라는 전체 체급의 절반만 선수단을 파견할 수 있다'는 규정을 넣었다. 금메달을 '싹쓸이'할 수 있는 한국을 의식한 결정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아니라 WTF가 주도적으로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점이다. WTF를 지난 30여년간 김운용 전 총재가 쥐락펴락했다는 것은 전 세계가 아는 사실이다. 사무국도 스위스가 아닌 서울에 있을 정도로 한국 중심의 국제 스포츠단체다. 이런 단체가 한국에 좋은 기회를 앞장서 빼앗은 까닭은 이렇다.

IOC는 시드니 대회를 앞두고 올림픽 종목이 자꾸 늘어나는 것을 우려했다.

대회가 너무 커지고 참가 선수가 늘어날 경우 집중도가 오히려 떨어진다고 본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정식 종목에 편입돼야 하는 태권도는 '간소한 경기'를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전체 선수단 규모를 100여명으로 하라는 IOC의 '쿼터'를 WTF가 받아들이고서야 태권도는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그런데 최대한 다양한 나라 선수들이 출전해 메달도 골고루 나눠 가져야 앞으로 정식 종목으로 뿌리내리는 데 유리했다. WTF로선 한국의 '팔다리를 자르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이웃 나라 일본이 종주국인 유도는 올림픽에서 14개 체급(남녀 각 7체급)으로 열린다. 전체 출전인원이나 체급별 국가 출전 인원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다. 유도가 태권도보다 훨씬 더 알려져 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국제 스포츠계에서 유도와 태권도의 차이는 일본과 한국의 경제력 격차보다 더 크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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