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더 내실있는 정치개혁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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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8.15 경축사 내용은 남은 그의 집권기간에 추진할 국정운영기조와 개혁방향을 제시한 것이어서 어떻게 실천될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金대통령이 강조한 정치 및 재벌개혁의 구체적 방안과 방법론에 대한 후속조처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우리는 金대통령이 제시한 정당 및 선거제도 등의 정치개혁안, 민주화와 인권보장을 위한 개혁입법 추진, 사법개혁, 중산층 및 빈민층을 위한 세제개혁과 보호방안 등의 여러 큰 그림에 대해 원칙적으로 동감한다.

金대통령이 내각제 개헌 유보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한 점도 민심을 수용한 것으로 평가됨직하다.

그러나 그의 정치.사회적 개혁안이나 현실인식에서 다소 소홀하게 다뤄졌거나 보완할 요소 역시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령 金대통령이 경축사에서 크게 비중을 둔 정치개혁에서 제도의 개혁만 강조하고 제도개혁에 못지않게 중요한 정치문화의 쇄신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언급이 없었던 것은 아쉽다.

우리 정치의 후진성은 실제 제도의 문제도 있지만 타협과 상생 (相生) 및 준법정신이 정치문화로 자리잡지 못한 데 더 큰 이유가 있다는 것이 정설에 가깝다.

바로 며칠전 임시국회에서 공동여당이 총리해임건의안 표결에 정상적으로 응하지 않고 소속의원 전원의 퇴장이라는 변칙을 자행한 것도 그런 사례일 것이다.

여당총재인 金대통령이 이 같은 퇴행적 정치문화의 고리를 끊는 결연한 모습을 보였더라면 정치개혁의 당위성을 높이고 그 추진에 훨씬 더 탄력을 얻었을 것이다.

국민회의를 개혁적 국민정당으로 만든다는 신당 창당 구상 등 정당개혁에 대한 언급에 있어서도 상향식 공천제 도입 등 정당민주화에 대한 의지가 보이지 않은 것은 역시 아쉬운 대목이다.

또 정치개혁을 함께 추진해야 할 야당과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점도 눈에 띈다.

올해 중앙당후원금의 경우 국민회의 대 (對) 한나라당이 1백88대1이라는 현격한 불균형을 시정하거나 야당을 동반자로 대하려는 대통령의 화해메시지가 천명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다.

정치자금의 투명성도 중요하지만 일정한 형평성도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임기 중 내각제 개헌 여부에 관한 명백한 입장표명이 없는 것은 앞으로 계속 논란의 여지를 남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밖에 검찰의 중립성문제, 사직동팀의 존재, 과도한 은행계좌 추적문제 등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분명한 시정언급이 있었더라면 민주화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한층 돋보였을 것이다.

여권은 앞으로 金대통령의 개혁구상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미비점을 적극 보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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