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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마운드 풍운아'노장진 첫아들 낳고 훨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노장진 (삼성)에게 '가족' 이라는 단어는 특별하다. 충남 공주군 조평리 산골마을에서 태어난 노는 어릴적부터 가정불화로 부모와 떨어져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했다.

게다가 3학년때 충남 육상 멀리던지기 선수로 발탁되자 대전과 공주읍에서 합숙하며 집을 떠나게 됐다. 노장진이 운동선수로는 드물게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어진 이유다. 노는 천부적으로 강한 어깨 때문에 공주중에 입학해서는 야구선수로 스카우트됐다.

이때부터 노는 모든 감독들이 탐내는 유망주였지만 '마운드의 풍운아' 라는 별명처럼 복잡한 야구인생을 살았다.

공주고 시절 노장진은 1년 선배 박찬호 (LA 다저스).손혁 (LG) 도 못해냈던 전국대회 결승전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며 팀을 우승시켰다.

그러나 원광대에 입학하기로 하고 3개월여 합숙훈련까지 했으나 선배와의 말다툼 끝에 학교를 박차고 나와 한화에 입단했다.

한화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고졸 신인으로는 드물게 선발투수로 기용됐으나 시즌 초반 1점차 패배를 네번이나 당하면서 감정을 자제하지 못해 감독의 신임을 잃었다.

노는 이후 음주상태에서 자동차 접촉사고를 내 구설수에 올랐고 술마시고 늦잠을 자다 훈련시간에 늦어 선배들에게 심한 질책을 받기도 했다.

노는 94년 현역으로 입대했다. "될대로 되라" 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전화위복이랄까. 노는 유격대 조교로 배치돼 인내를 시험받는 조교훈련을 받게 됐고, 이때부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자대에 배치된 후 고참들의 눈총을 피해가며 야구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야구를 좋아하는 선임하사는 휙휙 변하는 노의 변화구에 온몸에 멍이 들면서도 공을 받아줬다.

노는 올시즌 삼성으로 이적해 새로운 마음으로 볼을 뿌리기 시작했다. 결혼을 한 이후 평소 말수가 적던 노는 활달한 성격으로 바뀌었고, 갑자기 제구가 안돼 대량실점하던 고질병도 사라졌다.

노는 "곧 백일잔치를 치를 아들 학준이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안정된다" 고 한다. 아들 덕분인지 노는 4일 데뷔 7년만에 처음으로 10승 고지에 올랐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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