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대우 해외채권단 "차별대우"반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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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 2일 대우 김우중 (金宇中) 회장 비서실에는 13개 외국은행의 공동명의로 된 편지 한통이 배달됐다. 수신인은 金회장이었지만 참조인으로 강봉균 (康奉均) 재정경제부장관.이헌재 (李憲宰) 금융감독위원장이 지명된 것이었다.

지난달 30일 대우그룹이 70여개 외국 채권은행들에 보낸 편지에 대한 13개 외국은행들의 답장 형식이었다.

이 편지를 보낸 13개 은행들은 대우에 대한 대출금이 그리 많지 않은 은행들이어서 이들의 요구가 대우그룹 외국 채권단 전체의 입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일부에선 벌써부터 '추가 담보설정금지 조항 (Negative Pledge)' 을 들어 한국 정부나 대우가 대우그룹 처리과정에서 외국 채권단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해주지 않으면 채권회수에 나서겠다는 움직임마저 보여 대우그룹 처리에 뜻하지 않은 복병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외국 채권단의 불만 = 국내 채권단은 정부.대우와 긴밀하게 접촉하면서 대우 구조조정계획에 깊숙이 개입하는 등 채권보전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외국 채권단은 이런 정보에서조차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우가 채권단에 준 10조원 담보 가운데 6조원은 신규대출에 대한 것이라고 쳐도 4조원은 단기대출의 만기연장에 제공된 것이기 때문에 외국 채권단에도 이에 상응하는 채권보전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체이스맨해튼 은행 관계자는 "외국은행들의 대출도 대부분 언제든 요구하면 갚아야 하는 단기대출" 이라며 "10조원의 담보 가운데 외국은행에는 한푼도 주지 못하게 하겠다는 정부 발표는 납득할 수 없다" 고 밝혔다.

이들은 이에 따라 대우가 '추가 담보설정 금지조항' 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있다.

◇ 대우측의 입장 = 오는 18일 해외 채권단을 모아 대우의 현황과 구조조정 계획을 설명하고, 차입금 만기를 연장해 달라고 요청할 예정이다.

지난달 유동성 문제가 불거진 이후 대우는 해외 채권단의 이해를 구하고 일단 상환을 단기로 연장하거나 연체시켜왔다.

대우 구조조정본부 고위관계자는 5일 "이번 설명회를 계기로 만기연장 협상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것" 이라며 "해외 채권단 중 메이저 금융기관은 대부분 협조해줄 것으로 알고 있다" 고 말했다.

대우 관계자는 "해외 채권단과 그동안 신용 거래를 주로 해온 만큼 담보를 제공하지 않아도 믿고 이해해줄 것" 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장병주 (張炳珠) ㈜대우 사장은 "만기 연장이 아니라 새로 자금을 지원해준다면 해외 채권단에 해외자산을 담보로 제공할 수 있을지 따져볼 수 있다" 고 말했다.

한편 대우는 정부와 국내 채권단의 돌출 발언에도 몹시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자꾸 '담보는 없다' '일괄 협상을 한다' 는 식으로 단정적으로 말하는 바람에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며 "일단 협상 당사자인 대우에 맡겨놓고 정부와 국내 채권단은 뒤에서 지켜봐달라" 고 주문했다.

◇ 정부 입장 및 전망 =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정부가 직접 나설 수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민간기업의 부채에 대해 정부가 지급보증을 한다든가 담보를 알선해줄 경우 앞으로 국내 기업.금융기관의 모든 부채는 정부가 다 책임져야 한다는 전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해외부채만큼은 대우를 협상창구로 하고 가능한한 각개격파 형식으로 문제를 푼다는 게 정부 공식입장이다.

외국 은행들의 요구가 거세지고는 있지만 이들에게도 약점이 있다는 것이 협상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국 은행들은 대부분 대우에 대한 대출을 정상으로 분류해 대손충당금을 거의 쌓지 않았고, 따라서 대우가 잘못되면 거액의 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등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대우에 대한 대출금이 적은 은행은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많이 물린 곳은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으냐' 는 소극적인 입장이다.

이에 따라 금융계에서는 당장 외국 채권단이 한꺼번에 만기연장 거부나 대출금 중도회수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대출금이 적은 은행들은 대우측 대책마련이 소홀할 경우 대출을 손실로 처리해버리고 채권 회수에 나설 가능성이 큰데 설득 외에는 이를 막을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데 정부나 대우의 고민이 있다.

추가 담보설정 금지조항을 들고 나오는 것도 이들 은행들이라는 게 정부의 관측이다.

[해외채권단 편지 요약]

해외 채권은행들은 대우가 처한 상황이 복잡하고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처리를 해내기 어렵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해외 채권은행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한다.

지난달 대우그룹이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발표한 이후 해외의 많은 은행들은 만기가 돌아온 대출금도 회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대우는 이와 관련, 해외채권은행에 현금흐름이나 구조조정 계획 등에 대한 정보제공도 불성실하게 하고 있다.

이 상태에서 만기를 그대로 연장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국내 금융기관에 대해서만 담보를 제공한 것이나 해외채권단에 대한 한국정부의 일방적인 방침은 채권자 동등원칙에도 위배된다.

해외채권은행은 이같은 불공정한 처우에 유감을 표시하고 이같은 지적상황이 계속될 경우 대우의 구조조정 노력과 한국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심히 우려한다.

고현곤.정경민.표재용.곽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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