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닉설 여야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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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나라당은 30일 '불난 호떡 집' 과 같았다.

당직자들은 일제히 '지난 대선 당시 서상목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불법 모금한 돈 중 일부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측근들이 친.인척 계좌 등에 은닉해 왔다' 는 보도내용을 부인했다.

이회창 총재는 휴가지인 충남 예산에서 하순봉 (河舜鳳) 총재비서실장으로부터 보도 내용을 보고받고 "무슨 소리냐" 며 깜짝 놀랐다고 한다.

李총재는 즉각 강력히 대응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河실장 주재로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회의 결론은 "세풍 (稅風) 수사에서 李총재의 혐의가 드러나지 않자 측근에게 화살을 돌린 것" 이라는 분석이었다.

정형근 (鄭亨根) 기획위원장은 "사실 여부를 떠나 정권 핵심부에서 의도적으로 흘린 것으로 보인다" 고 했다.

이름이 오르내린 한나라당 의원들은 한결같이 부인했다.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를 최측근에서 보좌한 서상목 의원은 "당에서 받은 수표를 지인을 통해 쓰기 편한 현금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수표가 친인척 계좌에 남아있을 수는 있어도 은닉한 적은 없다" 고 말했다.

신경식 (辛卿植) 사무총장도 같은 주장을 했고 박명환 의원은 "대선 당시 후보 유세를 책임진 위치에서 그해 12월께 1백만원짜리 수표로 1억원을 받은 사실이 있다" 며 "그러나 부친 소유의 동교동 주택을 처분한 현금이 있어 이를 선거자금으로 사용하고 그 대신 수표로 받은 1억원을 동생에게 줬다" 고 주장했다.

하순봉 의원은 "분산 은닉할 돈도 없고, 분산 은닉한 사실도 없다" 며 "법적으로 대응하겠다" 고 했다.

그러나 여권의 입장은 정반대다.

국민회의 김옥두 (金玉斗) 총재비서실장은 "철저히 수사해 한점 의혹없이 규명돼야 한다" 고 주장했다.

자민련 이양희 (李良熙) 대변인도 "나라의 기강을 문란케 한 사건으로 묵과할 수 없다" 고 보도내용을 기정 사실화했다.

다른 여권의 관계자들도 대부분 "전혀 모르는 내용" 이라며 공식적인 반응을 삼갔지만 각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며 은닉설을 기정 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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