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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웅의 문단 뒤안길-1970년대 <34>육영수와 박목월2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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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호 10면

1969년 1월 25일 한국문인협회 시화전을 참관하고 있는 육영수 여사. 맨 왼쪽이 박목월 시인이다. 사진제공 한국정책방송

박목월이 ‘심사’를 맡았다고는 하지만, 한 나라의 절대 권력자인 박정희 대통령과 가난한 시인인 박재삼이 부르는 ‘짝사랑’ 노래를 듣고 누가 더 잘 부르는지 가늠하는 일은 술자리의 여흥에 불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나마도 대통령이 중간 중간에 목이 메어 노래가 끊기곤 했기 때문에 노래 대결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는 게 박재삼의 술회였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언이 있다. 그 자신 시인이며 경향신문 정치부장을 거쳐 몇 차례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재호의 회고다. 1970년대에 박정희의 술과 노래 파트너로 자주 자리를 함께했던 정재호는 박정희가 육영수의 사망 이후에는 술자리에서 노래를 부를 때마다 대목 대목에서 눈에 물기가 맺히고 목이 메는 경우가 잦았다고 전한다. 가령 ‘짝사랑’을 부를 때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라는 대목에서, ‘황성옛터’를 부를 때는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있노라…’는 대목에서 한동안 노래를 이어가지 못하곤 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때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박재삼은 박정희가 군인으로서 혹은 정치인으로서 영욕의 부침이 심했고, 비판받을 일을 많이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때 박정희에게서 진솔하고 소박한 인간의 참모습을 보았노라고 했다. 덧붙여 박정희의 정치적 이력을 빼놓으면 그런 성정은 박목월과도 비슷한 점이 많았고, 그래선지 육영수에 뒤이어 박정희도 한 살 위인 그런 박목월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사실 박목월은 천성적으로 심성이 부드럽고 섬세하며 따뜻한 시인이었다. 생전에 그는 ‘시는 곧 사람이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그와 같은 그의 심성은 그의 작품세계를 통틀어 여실하게 나타나고 있다. 40년 정지용이 ‘문장’지에 박목월을 추천하면서 ‘북에 소월이 있다면, 남에는 목월이 있다’고 한 것도 박목월의 시 속에 나타나는 그런 심성을 염두에 둔 찬사였다. 그가 정 많고 눈물 많은 시인이며, 무슨 일이든 거절하지 못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는 시인이기에 그로 인해 빚어진 일화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젊었을 적부터 박목월과 친분을 쌓아왔던 황금찬에 따르면 한밤중 시를 쓰다가 창밖에서 자신의 집에 침입하려고 노리는 도둑을 보고 들어오라고 문을 열어주었다는 이야기, 처자식을 거느린 자신을 좋아하던 한 젊은 여성을 설득하다 못해 한동안 제주도로 피신했다는 따위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런 박목월이 마지못해 청와대에 드나들게 되면서 반대급부를 염두에 뒀거나 예의에 벗어나는 행동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렵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대개 왜곡되거나 부풀려져서 시중에 떠돌았다.

육영수와 박목월 사이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은 박목월이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심심치 않게 문인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한국시인협회가 주최해 지난 1월 18, 19 양일간 300여 문인들이 모인 가운데 박목월의 고향 경주에서 열린 ‘청록집’(박목월·조지훈·박두진의 3인 시집) 발간 60주년 기념 시 축제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모임에 참석했던 한 시인의 ‘현장 중계’는 이렇다.

두 번째 주제발표에 나선 시인이자 평론가인 남진우는 어떤 선배 시인에게 들은 이야기라면서 “어느 비 오는 날 육영수와 박목월이 청와대 경내를 거닐던 중 박목월이 육영수의 치마폭을 들어주었다”는 일화를 공개했다(70년대에 기자가 들은 이야기는 육영수의 치맛자락이 땅에 고인 빗물에 젖을 것 같아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올려 주었다는 것인데 이것도 사실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물론 발제자가 박목월을 폄훼하려는 의도로 꺼낸 일화는 아니었다 해도 듣기에 따라서는 거북할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장내가 잠시 술렁거렸다. 토론 시간이 되자 이건청은 “그 이야기를 꺼내는 의도가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고, 허영자는 “목월은 육 여사를 한 여인으로 존경했고, 그래서 육 여사를 사랑하는 모임까지 구성했다”면서 “(목월이 그렇게 했다면) 그것은 단지 한 예술인이 갖고 있는 감성과 순수성의 발로였을 따름”이라고 박목월을 옹호했다. 답변에 나선 남진우는 “목월이 이룩한 문학적 업적이 작지 않은 것임에도 늘 업적에 비해 부정적이고 가볍게 평가되는 풍토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해 어수선한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중앙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문학 평론가로 추리소설도 여럿 냈다. 1960년대 문단 얘기를 다룬 산문집 『글동네에서 생긴 일』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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